[칭찬의 득과 독]
요 며칠 계속되는 아이에 대한 칭찬이다. 어제 글에 아이는 배우는 것에 대한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오늘은 할머니와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아이의 눈빛이 전과 달리 아주 또렷하고 똘망똘망하며 빛이 난다고 말씀드렸다. 최근에 배우는 것에 대한 재미를 느끼고 있어 공부를 열심히 하려 한다고 말씀드렸다. 옆에서 듣고 있는 아이는 모른 체하고 있지만, 귀는 이미 열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집으로 돌아와 정리를 할 시간이 필요하여 20분 정도는 자유시간을 가지라고 했다. 어김없이 TV를 켠다. 하루에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큰 행복일 것이다. 그 내용이 절대적으로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면 이 시간만큼은 어떠한 개입도 하고 싶지 않다. 20분이라는 시간이 많은 시간이 아니다.
아침 등교 전 준비를 하며 오늘 해야 할 일정에 대해서 알려주며, 나름의 스스로 루틴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일깨워 주는 것을 이번 주에 집중해 보고 있다. 요일별 수업이 무엇이 있는지? 매일 해야 하는 학습지 숙제와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학교 숙제, 그리고 독서에 대한 습관화이다.
시간 배분에 대하여 아이 스스로 하기에는 아직 어려운 점이 많기에 시간 할애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만 이끌어주고 있다. 따라서 오늘은 20분이라는 짧다면 짧은 시간을 자유 시간으로 제공해 주며 긴장을 풀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전에 이야기했지만, 아이는 약속을 굉장히 잘 지키는 아이다. 약속을 어기는 건 보통 부모이니 아이는 약속을 어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
20분이 지나고 약속을 했던 숙제를 하자고 하니 스스로 TV를 끄고 책상 앞에 앉는다. 학습지를 꺼내고 오늘 얼마나 하고 싶은지 물어보니, 뺄셈 20페이지를 하겠다고 한다. 하루에 4~5페이지 분량이 할당된 양이지만, 스스로 한다니 말리지 않는다. 아이가 숙제를 진행하는 동안 옆자리를 지키며 어려워하는 것이 있을 때 도움을 주기 위해 앉아 있었다. 1페이지에 11문제가 있으니 20페이지면 총 220문제이다. 학습지 특성상 지겹도록 반복이다.
반복과 암기를 좋아하지 않는 교육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수학 올림피아드 지도 교사로 활동을 했던 교육 전문가의 말씀 중 어린 시절 학습지를 통해 연산 능력에 대한 꾸준한 반복을 통해 오류를 줄여 나갔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의 생각을 아이에게 강요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는 문제를 풀어나가고 점차 빨라지고 정확해지는 연산 과정을 즐기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기에 스스로 몇 페이지를 하겠냐고 물으면 언제든지 할당된 수보다 많은 양을 하겠다고 하나보다.
220문제 중 1개만 틀렸다. 틀린 이유도 빨리 풀겠다고 시간을 스스로 촉박하게 푸시 하여 발생한 것이다. 틀리는 것에 대한 굉장한 거부감을 보일 때가 많이 있기에 틀린 것을 바로 지적하지 않았다. 11문제를 다 풀고 나를 쳐다보았을 때 틀린 것이 없다면 '다음 장으로~' 한 마디만 해줄 뿐이다. 반대로 그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 아이가 스스로 본인이 푼 내용을 보고 스스로 틀린 곳을 찾고 고칠 수 있도록 대응만 해준다. 지적을 하는 것이 아닌 긍정의 반응을 보여주지 않고 기다려 줌으로써 본인이 찾도록 하니 틀린 것에 대한 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잘 지나간다. 틀리는 게 싫은 게 아니라 지적을 당하는 것이 싫은 것 같다.
뺄셈만 20페이지를 한다는 게 아니라 한자도 20페이지를 하겠단다. 한자도 시키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학습지 선생님과 내가 나누는 대화를 듣더니 책 읽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니깐 하고 싶단다. 그래서 하게 되었는데, 영어 파닉스와 한글 조음 과정을 이해하고 난 후 글자를 스스로 떼어 그런지 문자에 대한 관심이 많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것을 좋아한다.
일본을 다녀오고, 대만을 다녀왔을 때 한자로 쓰인 것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학습지 선생님께서 건네준 한자 관련 브로슈어를 보고는 본인이 이 글자를 안다며,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하고는 씩 웃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한자가 중국 것인지 일본 것인지에 대한 말은 해주지 않았지만, 일본에 갔을 때 쓰여 있던 간판이나 공항 내 안내 표지판을 떠올리며 한자어에 대한 관심을 보인 것 같다.
언어를 좋아하는 것은 굉장히 축복받은 일인 것 같다. 주위에 언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보면 보통 논리적이고, 말을 수려하게 잘하며, 매사 일 또한 깔끔하게 처리하는 경향을 보인다. 무엇보다 언어에 감각이 별로 없는 나는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일단 언어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아이가 흥미를 깨지 않도록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입장이다.
최근 약간 거리를 두고 조심하고 있는 점이 있다면 '많은 개입에 대한 고민'과 '칭찬의 득과 독에 대한 경계'이다. 아이 스스로 자발적인 동기부여를 통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도록 습관이 마련되기 전까지 개입을 하여 방향성을 잡아주고자 하는데 어느 정도까지 개입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고민이 든다. 자칫 개입하는 방법에 따라 아이에게 교육에 대한 가스라이팅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특히 칭찬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칭찬이 절대적으로 득으로서 작용해야지 독으로서 작용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아이가 칭찬을 받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만족감과 스스로의 목표 달성을 위해 하는 등 본인의 삶의 일부로서 가져가야 할 부분이 되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칭찬은 아이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독려이자 응원의 정도로만 작용해야지, 결코 목적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가끔 아이가 칭찬을 갈구하는 듯한 눈빛을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긴장을 하게 된다. 그 순간 달콤한 말을 건네게 되면 목적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자리를 잠깐 뜬다거나, 화제를 전환한다던가 일단은 바로 아이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실망감이 들어서는 안되는 부분이기에 어려운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아버지께서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다. 공부는 타고나야 하는 것이며, 그냥 하게 내버려두면 알아서 다 한다. 다만, 어릴 때는 그 방법을 모르니, 아이와 공부를 할 때는 본디 이것이 일이 아니라 놀이라고 생각이 들도록 부모가 옆에서 잘 구슬려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씀을 하신다. 그리고 항상 곁에서 관심을 갖고 있음을 일깨워 주기만 하더라도 알아서 잘할 것이라는 말씀을 빼놓지 않으신다. 어릴 때 공부하라는 말을 한 번도 듣고 자라지 않았지만, 성적은 나쁘지 않게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부모님의 믿음과 관심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렇기에 같은 방법으로 아이의 곁에서 항상 응원하고 믿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호기롭게 국어도 20페이지를 하겠다고 표시를 하고 하던 중 10페이지 정도 하다가 "아빠, 혹시요... 여기까지만 하고 나 자도 돼요?"라고 말한다. 이미 해야 할 양을 훨씬 넘긴 상황이기에 주저 없이 "당연히 되지. 가서 이만 잘까?" 하니 씩 웃으며 침대로 향한다. 그 발걸음이 경쾌하다.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어달라며 책을 건넨다. 팔베개를 한 채 몇 페이지를 읽어주니 금세 잠이 든다. 몸으로 노는 것보다 머리로 노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커가면서 느끼게 될 것이다. 항상 일이 아니라 놀이라고 느끼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