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라]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라.'라는 말을 대부분 들어봤을 것이다. 계획을 세울 때 핵심 사항을 중심으로 큰 그림을 그린 후에 세부 사항을 하나둘씩 세워 간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부산으로 간다고 했을 때, 서울에서 부산으로 간다라고 하는 큰 그림을 그린 후 어떠한 교통수단을 이용할지를 선택하고, 그 교통수단에 맞춰 세부 계획을 하나 둘 덧대어 간다.
계량경제학 또는 금융공학 분야에서도 분석을 할 때 너무 세세한 간격으로 분석을 하게 되는 경우 자주 발생하는 '노이즈'로 인해 분석의 결과를 얻기 힘들어질 때가 있다. 가령, 주식 차트는 분석한다고 했을 때, 사람마다 차트를 보는 인터벌이 다 다를 것이다. 가장 단순하게 월봉을 보고 월초 기준으로 오름세면 사고 내림세면 파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반면, 짧게는 1분을 기준으로 사고팔고를 반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같은 회사이고, 월초를 기준으로 오름세를 보이고 있어도 1분을 기준으로 볼 때는 하락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이 나타난다. 나는 주가를 설명할 때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는 주인 이야기를 한다. 주인이 강아지를 산책시키러 나갈 때 어떤 루트로 갈 것인지 미리 큰 그림을 그리고 나갈 것이다. 그리고 강아지 목에 줄을 매달고 나갈 것이다. 강아지는 바깥의 다채로운 냄새에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할 것이다. 주인은 강아지의 움직임에 따라 줄을 놓아주기도 하고, 가고자 하는 방향에서 너무 멀어질 경우 줄을 당기기도 한다. 이를 주가에 적용시켜 설명을 해본다면 주가의 이동평균선이 주인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되는 것이고, 주가의 표준편차와 상대 강도의 곱은 주인이 강아지에 걸어둔 목줄인 것이다. 주식 시장은 주식을 사고자 하는 매수, 팔고자 하는 매도의 힘겨루기에 의해 주가가 결정된다. 매수세가 강하면 이동평균선이 우상향을 그릴 것이고, 매도세가 강하면 이동평균선이 우하향을 그릴 것이다. '효율적 시장 가설'에 의해 정보는 즉각적으로 반영되어 주가가 제자리를 찾아간다고 하지만, 그 정보를 접하는 빈도와 정보의 접근성을 기준으로 했을 때 기관 투자자와 개인 투자자 간의 격차는 상당히 크다. 이를 종합하여 정리를 해본다면, 주가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 기관 투자자의 영향력이 개인 투자자의 영향력보다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하나 더 짚고 넘어가자면 기관 투자자의 경우 투자 자산 풀이 크기 때문에, 한 번에 주식을 매매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을 두고 분할해서 매매를 하기 때문에 큰 흐름이 일정한 방향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인터벌을 크게 잡고 방향을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것이다. 큰 숲을 보고, 그 안에 나무가 어떻게 심어져 있는지를 보고 길을 찾아 나아가야 한다. 이미 4~5년 전에 주인과 강아지 이야기를 하면서 만들어 놓은 최초의 모델이 있었고, 그 모델을 이용하여 필터링을 한 후 걸러진 종목들을 이용하여 매매를 해야 한다고 했었다. 그게 처음 시작이었는데, 단편적인 이야기였고, 그 이후에 계속 공부를 하며 추세, 저항, 파동 등등 다양한 이론들을 적용시키며 모델을 정교화 하고, 해석하는 법을 깨우쳐왔다. 그러면서 점점 욕심이 생겨 중장기를 기준으로 운용하는 것에서 점차 매우 짧은 시간 기준으로 트레이딩 하기 시작했다. 점점 노이즈가 낀 채 운용을 하다 보니 수익을 냈다가도 손실을 내기를 반복하게 되었고, 손실을 내면 손실을 상쇄시키고 더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생기기도 했다. 주가라는 것이 매수, 매도의 힘 싸움이기에 위, 아래로 움직이기 마련이고, 내가 판단하는 방향과 반대로 움직이면 노이즈가 되는 것이다. 그게 빈번하게 만들어질수록 더더욱 노이즈가 끼게 된다.
거대한 숲을 보고 지도를 보며 길을 나아갔더라면, 간혹 나타나는 나무 하나가 나를 가로막는다 쳐도 베거나 옆으로 비껴 지나쳐 가 그 숲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순서를 반대로 하여 계속 나무를 쳐 내가며 길을 만들어 내겠다고 했으니,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른 채 지그재그를 반복했던 것이다.
내가 마켓 메이커도 아니고, 신도 아니고, 점쟁이도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시장의 상황을 알려주는 다양한 정보를 잘 해석하고, 그에 따른 여러 가지 가능성을 예측하고 준비하고 있다가, 그 예측된 방향에 맞는 것을 잘 골라 시장이 가는 방향에 올라타 편하게 물줄기의 흐름을 타고 가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
워런 버핏 옹께서 자신이 죽게 되려면 아내에게 남길 유언장에 다음과 같이 적어놨다고 한다. '내가 남겨놓은 돈의 10%는 국채 매입, 그리고 나머지 90%는 S&P 500 인덱스 펀드에 담으세요.' 결국은 국가의 경제 정책에 맞춰 채권을 그리고 시장을 반영하고 있는 주식시장의 패시브 펀드에 돈을 맡겨 시장 그대로의 방향에 올라타라는 말씀인 것이다.
나무를 보면 위, 아래로 함께 흔들린다. 나무를 아예 안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전체의 그림을 계속 머릿속에 그린 채 나무를 보아야 한다. 그래야 흔들리는 경우를 대폭 줄일 수 있다.
오랜만에 함께 공부를 했던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최근 기본부터 배우기 위해 온라인에서 잘하는 분이 열어둔 방에서 함께 다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초심으로 돌아가 보았다. 많은 것을 몰랐고, 겨우 일반적인 것들만 알던 시절에 간단한 규칙들로 회귀해 간다는 것을 느꼈다.
결국 보고서를 10번이고 30번이고 100번이고 고쳐본다고 한들, 제일 처음 만들어 놓은 보고서가 제일 낫구나 싶을 때가 많은 것처럼, 볼 수 있는 것이 큰 그림밖에 없을 때, 그저 겉핥기 같아 부실해 보였던 전략이나 생각들이 결국은 핵심가치였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고 난 후의 결과물인 것 같다. 새로운 것을 할 때마다 똑같은 짓을 하게 된다. 다음번에도 똑같이 이야기하겠지?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그렇게 계속 성장하는 것이다.
[주중 쇼핑]
'오빠, 오늘 저녁에 OO이 신발 사러 가자. 콘서트 때 준비물인 하얀색 신발이랑 그 외 하나 더'
점심시간을 기해서 와이프가 메시지를 보냈다.
'아웃렛?'
'ㅇㅇ, 그쪽 가보자'
할머니께서 겨울이고, 아이가 태권도 갈 때 종종 맨발로 다니는 모습을 보고 털신을 하나 사주셨는데, 한 신발만 계속 신었더니 벌써 많이 더러워지고 요즘 자꾸 구겨 신어서 뒤쪽이 약간 해지기도 했다. 그게 내심 걸렸나 보다. 월 말 즈음 콘서트 준비물이 공지사항에 떴고, 흰색 운동화가 필요하다고 하니 겸사겸사 준비할 겸 생각을 한 듯하다. 피아노와 태권도 모두를 하고 난 후 저녁까지 먹고 간다면 너무 늦을 것 같아, 얼른 피아노 선생님께 연락을 드려 피아노는 다음에 다른 시간에 하기로 조정을 해두었다.
아이가 셔틀버스에서 내리고 묻는다.
"아빠, 오늘은 뭐 해야 하지? 나 지금 어디 가요?"
"오늘은 원래 피아노 해야 하는데 피아노는 안 하고, 할머니 댁에서 간식 먹고 바로 태권도 갔다가, 저녁 먹고 OO이 신발 사러 갈 거야. 학교 선생님이 흰색 운동화가 필요하대. 그리고 엄마가 흰 운동화 말고도 하나 더 사준다고 하니까 기대해 봐."
"나 피아노 가고 싶은데..."
"피아노는 오늘은 안 가고, 내일하고 모레 이틀 동안 갈 거니깐 오늘은 아쉽더라도 기분 좋게 새 신발 사러 가보자. 오케이?"
"오케이. Hurray!"
할머니 댁에 들어가자마자,
"할머니, 저 왔어요. 할머니, 저 이따가 신발 사러 갈 거예요. 흰색 운동화 살 거예요."
"어 그래? OO이 신발 사러 갈 거야? 좋겠네~. 예쁜 신발 잘 골라서 사가지고 와서 할머니 보여줘."
"네."
요즘은 머 하기만 하면 자랑이다. 오늘 머리 묶은 것도 맘에 들었는지 아침에 셔틀버스 기다리러 가니 다른 부모님들에게 자랑을 하고, 머를 하기만 하면 자기를 보라며 자랑을 한다. 본인을 그렇게 드러내고 싶은가 보다.
저녁을 먹고 아웃렛에 갔다. 오랜만에 와보니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특히 유아, 어린이 어패럴이 모여있는 곳은 새 단장을 해서 꽤나 좋았다. 아웃렛 특성상 오픈돼 있던 공간인데, 새 단장을 하고 나니 아웃렛이라기보다는 백화점 내부 같은 느낌이 나도록 공사를 해두었다. 조명도 밝고, 벽 색깔도 아이보리와 나무색이라 좋고, 밀폐가 잘 되어 따뜻하다. 주말이면 도로가 꽉 막힐 정도로 차가 많고 사람도 많아 정신없는데, 주중 저녁에 오니 거의 사람이 없어 너무 쾌적하다.
"아빠, 이거 OO이가 입고 왔었잖아. 나도 이거 사줘요."
"오늘은 신발을 사기로 약속하고 왔잖니? 오늘은 드레스를 사는 날은 아니니깐, 오늘은 신발에 집중하도록 하자. 알겠지?"
"아, 맞다. 네, 아버지." (엄마가 공손하게 말을 할 때는 "네, 어머니"라고 하라고 시켰는데, 응용을 해서 말을 하네.)
"아빠, 이 구두, 지난번에 OO이가 신었던 거 맞지, 나도 구두 사고 싶다."
요즘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그동안 다른 친구들이 입은 것, 신은 것 등을 유심히 관찰했나 보다. 눈썰미가 좋은 것인지 한두 번 보고 잘 기억을 해서 본인이 필요할 때 언급을 하다니. 그런 모습에 미소가 지어진다.
"OO아, 이거 한 번 신어볼래?"
엄마가 흰색 운동화를 하나 가리키며 물어본다. 공룡이 그려져 있는 신발이고, 걸을 때 불이 껌벅거린다. 아이가 신어보고는 마음에 들어 한다.
"콘서트 때 신발이 번쩍거리면 좀 그렇겠지?"
"응, 그럴 거 같은데? 그냥 흰색 단화여야 할 것 같은데?"
바로 사지는 않고 다른 곳을 둘러본 후 결정하기로 하고 다른 매장에 가보았다. 지하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젊은 친구들이 오는 곳이라 그런지 주 중이지만 많기도 많고 시끌벅적 하다.
신발 전문 매장이라 그런지 다양한 브랜드의 다양한 신발들이 놓여있다. 수많은 신발들 중에 스케쳐스 흰색 운동화가 눈에 들어온다.
"이거 어때? 난 이게 맘에 드는데. 한 번 들어봐 이거 진짜 가볍다."
"어, 이거 진짜 괜찮네? OO아, 이 신발 어때? 한 번 신어볼까?"
"난 공룡. 공룡 신발이 좋아."
"아빠는 이게 가벼워서 좋은데. 한 번 신어보자."
아이는 관심이 없는지 딴청이다. 저 나이 때 애들은 그렇지. 단순한 것보다는 포인트가 들어간 게 좋을 나이지.
"OO, 일로 와봐. 그러면 이런 신발은 어때?"
"어, 이거 OO이가 신었던 신발이야."
(가슴에 안고, 볼을 갖다 대며) "아~ 좋다."
친구가 신었던 어그 스타일의 털신을 보고는 좋아한다.
"그럼, 공룡 신발 안사고 이거 사도 돼?"
"응, 이게 좋아."
그런데, 사이즈가 없단다. 조금 더 둘러보다 보니 다른 스타일에 다른 색상이지만, 토끼 귀 같은 포인트가 들어간 털신이 있다.
"이건 어때?"
"어! 이게 더 좋아."
신발을 신어 보더니 기분이 좋아졌는지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럼, 이 신발을 하고, 아까 본 공룡 운동화 말고 흰색 이 운동화를 사는 건 어때?"
"좋아. 그렇게 하지 뭐."
뭐, 협상의 결과물로 선심 쓰는 척하며 마지못해 받아주는 것도 아니고. 하지 뭐는 뭐야 하지 뭐가.
아내가 방금 산 토끼 귀 달린 털신을 들어 올리며 아이에게 물어본다.
"너, 이 신발 신고 갈래?"
"응. 이 신발이 좋아요."
신발을 신고 무슨 개선장군 걸어가듯이 앞장을 선다. 새것은 언제나 좋은가 보다.
주중에 시간을 내고 쇼핑을 나간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만인데, 매우 만족스러운 시간이다. 아기 때 유모차에 눕혀 놓고 돌아다녔었지만, 이제는 커서 셋이 나란히 손잡고 걸어가며 본인이 사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어가며 쇼핑을 하니 새로운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