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 주저리

2024년 12월 12일 - 25일차

시나브로상승 2024. 12. 13.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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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는 수장(首長)에 대해서 생각이 많은 하루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김없이 핸드폰으로 뉴스를 본다. 오늘은 전 회사의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전 회사의 회장님께서 사모펀드에게 중간지주사 격 회사의 지분을 무상증여하는 내용이다.

 

3개월가량 임직원에게 급여를 줄 수 없는 상황이 되니, 새로운 투자자를 모집하기 위해 질권 설정을 해지하는 조건으로 알짜 회사의 지분을 넘긴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고 망해가는 회사를 조속히 정리하고 가만히 있어도 돈이 도는 회사만 남기지 굳이 왜?'라는 질문을 할 것이다.

 

회장님께서는 독신이다. 물려줄 자식이 없다 보니 본인은 연구에 전념을 하고 나중에 죽기 전에 IT에 초점을 둔 공과대학교를 세우는 것이 목적이신 분이다. 이미 미들웨어와 DB 부문은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회사로 키워냈고, 나머지 분야인 Cloud, OS, 그리고 AI 기반 애플리케이션을 총망라한 A&C(AI & Cloud)라는 새로운 부문까지 IT와 관련된 전부를 아우르는 큰 꿈을 가지고 오랜 시간 동안 회사를 이끌어 오셨다. 이렇듯 죽기 전까지 마지막 꿈을 이루고자 올인을 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회장님께서는 입버릇처럼 하는 말씀이 있으셨다. '금융 하는 놈들은 다 도둑놈이야. 자기들이 기술을 모르는데 가치를 어떻게 정확하게 매길 수 있어. 투자를 한다고 해 놓고 연구를 하고 제품을 낼 수 있게 기다려 주질 않잖아? 날강도 같은 놈들이지.'

 

이 말씀을 듣고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분명 회장님께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금융은 신뢰를 밑바탕에 두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계실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에, 당시 말씀을 들었을 때 미묘한 감정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그 회사에 지원을 했을 때, 전 전 직장에서 한 회사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전략을 세우고, 그렇게 세운 중장기 로드맵을 바탕으로 현장에 파견을 나가 경영진과 함께 몇 년 있으면서 종국에 경영정상화를 이뤄낸 경험이 있었기에, 그 얄팍한 자신감으로 재무 상태가 좋지 않은 회사였지만, 또 한 번 재무 상태를 바르게 잡아보겠노라고 생각을 했었다. 이미 사모펀드가 들어와 있었다는 점도 알고 있었고, 어떻게 하면 재무 상태를 정상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회사에 합류하여 속속들이 살펴보면 충분히 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물론, 내가 지원을 했던 포지션이 아닌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본부장으로 바뀌어 회사 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 말이다.

 

회사에 들어가고 난 후 많은 부분에 놀랐다. 제대로 된 제품도 없고, 아직 매출을 내고 있는 형국도 아닌 회사에서 임직원에게 급여를 비롯하여 각종 복지가 꽤 좋은 편이었다. 자유로운 연구의 결과가 나오기 위해 연구개발자들에 대한 대우도 좋았고, 심지어 곳간은 비어 가는데 연봉 10% 인상 등의 모습은 가히 파격적이었다. 회장님은 본인이 생각하고 있는 제품만 나오면 여기저기서 투자하겠다고 난리일 것이고, 매출은 자연스레 나올 것이라 자신하고 계셨기에 그러한 결정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회사의 오너는 성공하면 사업가이고, 실패하면 사기꾼이다'라는 말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대목이 바로 저 부분이었다.

 

와이프의 회사 회장님은 현 상황으로 보면 사업가이다. 그것도 아주 굴지의 회사를 이끌고 계신 회장님이다. 아직도 본인이 현역으로 뛰며 사업을 이끌어 가시고, 전투적으로 임직원을 갈아내며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가끔 도가 지나칠 정도의 행보를 보여 회사에 누를 끼치기도 하고, 반대로 열열한 지지를 받기도 한다.

 

회사 생활을 하며, 그리고 회사를 떠나고 난 후 작금의 상황을 보며 도대체 왜 두 회사의 운명은 이리도 다를까? 에 대해서 생각을 해왔고, 또 오늘도 해보게 되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첫 번째 이유는 물려줄 자식이 있고 없고의 차이이다. 물려줄 자식이 없는 전 회사의 회장님은 오롯이 본인의 꿈만을 생각하고,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한평생 연구만 신나게 하다가 죽었다고 남길 수 있기에, 무모한 도전을 계속하고 계시는 것 같다. 반면, 와이프네 회사 회장님은 자식들에게 물려줄 회사의 내실을 키우는데 한평생을 바친 것이고, 지금도 그렇게 키워내고 계신 것 같다.

 

두 번째 이유는 실질적으로 론칭된 회사의 제품이 있고 없고의 차이이다.

 

전 회사의 회장님의 머릿속에는 어떤 제품을 떠올리고 계시는지 알고 있다. 회장님은 CTO로서 본인이 전면적으로 지휘를 하기 위해 인프라부터 애플리케이션까지 다 하나의 회사들도 쪼개내고 전문성을 가진 연구본부를 두고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제품을 만들어 내고자 하셨다. 하지만, 애자일하게 각 회사마다 동시다발적으로 연구가 진행되며 같은 속도로 원하는 바를 결과물로서 내놓아야 만이 그 생각이 달성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속도가 맞지 않았고, 가장 중요한 플랫폼 레벨에서 구멍이 계속 나다 보니 애플리케이션 레벨은 전혀 진도를 나갈 수 없는 형국에 맞닥뜨려 있었다. 아마 다시 투자를 받더라도,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와이프의 회사는 첫 번째 제품을 출시한 후 이후의 파이프라인이 셋업 되고 난 후 지금까지도 계속 성공적인 결과물을 내어가며 나아가고 있다. 이제는 보편적인 개념이 되어버려, 경쟁사들도 많아지게 되어 전보다는 더 어려워졌지만, 오히려 회장님은 더욱 정력적으로 일하며 임직원들이 혀를 내두르게 하고 계신다.

 

바로 이 점이 또 운명을 다르게 하는 세 번째 요인이다.

 

전 회사의 회장님은 교수를 하다 회사를 차린 학자다. 본인은 사업 면모가 없는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하고, 회사의 사업을 알리는데 시간 할애를 많이 하지 않으셨다. 제품이 없는 단계에서 투자자를 모집을 하기 위해서는 가장 잘 알고 앞으로의 비전을 확실하게 설명할 사람이 세일즈를 나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개념이나 제품에 대한 청사진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업 부서나 재무부서의 수장을 맡고 있음으로서 회사에 대한 제대로 된 마케팅을 하지 못했다. 여러 차례 그러한 신호가 나왔고, 여러 차례 그 점에 대해서 건의를 드리기는 했지만, 그러려고 월급을 주는 것이라고 하시며 여전히 각 회사의 연구본부를 돌며 연구 회의를 하는데 총력을 다 하셨다. 제품의 출시가 요원한 가운데 사태의 심각함을 인지하고 연구본부장들이 모여 각 회사의 제품을 만들기보다 노코딩 개발 플랫폼을 우선적으로 제품으로서 출시할 때까지는 모든 회사가 그것에 집중을 하는 것을 제안드려보기도 했지만, 회장님의 로드맵에 맞지 않았는지 단칼에 거절당하기도 했다. 또한, 회장님께서 직접 투자자를 만나 세일즈가 필요함을 말씀드리기도 했고, 재무 상태가 좋지 않으니 점검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려보았지만, 영업과 재무 본부장들의 말씀에 힘을 실어 주시는 등 여러 차례 바로잡을 기회가 무산되기도 했다.

 

반면, 와이프의 회사 회장님은 처음 첫 삽을 뜰 때부터 지금까지도 본인이 전면에서 영업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시며, 잠재 고객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해당 내용들을 임직원들에게 전파하고, 로드맵을 지속적으로 수정해 간다. 그리고, 국제 정세나 정치, 경제 가리지 않고 본인의 판단과 판단의 근거를 임원들과 함께 나누며, 지속적으로 집단지성의 힘을 길러낸다. 그리고, 회사의 상황을 수시로 체크하고, 가감 없는 질책을 하기도 하고, 잘 한 부분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업계 최고의 대우를 하려면 우선 업계 최고의 아웃풋을 내며 승승장구할 때 할 수 있는 일이다.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이 최고로 우수하다고 한 들 임직원의 머릿속에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를 했는지 모르고, 설사했더라도 아웃풋으로 낸 이후에 매출이 발생하고 최소한 영업이익이 발생을 해야 가능할 수 있는 일이다. 결과물도 없이 연구에 대한 기대감과 대우를 잘 해줌으로써 더 빠르게 아웃풋을 낼 것이라는 굉장히 naive 한 생각이 회사를 좀 먹었다고 생각한다. 몇몇의 직원들은 정말 열심히 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특급 대우를 해주지 않아도 원래 그렇게 할 친구들이다. 그런 헌신적이고 잘하는 친구들을 잡기 위해서 대우를 잘해줄 수 있으면 해주는 게 맞다. 하지만, 그러한 친구들은 돈이 목적이 아니라, 정말 그 일이 재미있기에 그렇게 하는 친구들이다. 잘 되고, 아웃풋이 나왔을 때 그때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는 방법을 택했더라면, 현실이 되어버린 회사의 지분 무상증여 같은 상황을 직면하지 않았을 것 같다.

 

당장 돌아오는 급여일에 임직원에게 지급할 돈이 없다는 말을 급여일 하루 전에 꺼내는 몰상식한 재무본부장을 그대로 두었으니 어쩌면 회사의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자명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그 재무본부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지금처럼 왜 지분을 넘기고 껍데기만 남은 회사를 살려 보겠다며 투자자를 모집하는 방법을 택했는지 그림이 그려진다.

 

분명,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기회는 있었다. 회장님 사재도 있었고, 그냥 풋옵션을 행사하지 않은 채 있는 것 가지고 집중을 하며 보란 듯이 제품을 내고, 그다음에 비싼 값을 지불해서라도 가져올 수 있었을 것이다. 금융을 하는 놈이 도둑놈이 아니라, 제대로 된 금융을 다룰 줄 아는 놈이 천군만마를 얻게 해주는 조력자가 되었을 것이다.

 

1년도 채 다니지 않은 회사이지만, 회장님께서 나를 긍정적으로 봐주시고 좋은 대우로 믿고 맡기셨던 분이었고, 또 함께 생활을 했던 본부 연구원들 또한 좋은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소식이 뜨면 매일 볼 수 있게 설정이 되어있다. 좋은 소식이 날아오길 희망하고 기다렸는데, 매번 뜨는 소식이 좋지 않아 마음이 썩 좋지만은 않다.

 

위 소식을 보고 난 후 채 1시간이 되지 않아, 오늘도 대통령의 담화가 화두가 되었다.

 

여전히 대통령은 계엄이라는 상황을 가볍게 생각하고 있고, 실패할 계엄을 알고서 일을 진행했다는 말과 이미 조사를 통해서 체포와 국회 봉쇄 이유 등을 실토한 상황에서 본인은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다는 등의 발뺌하는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탄핵의 당위성이 보다 정당화될 수 있도록 열심히 어필하는 듯했다. 처음의 톤은 그렇다 쳐도, 점점 본인이 담화문을 읽어가며 스스로 화가 솟는지 점차 격앙된 듯한 말투 또한 거슬렸다.

 

또한 네 마녀의 날임에도 추세가 꺾이지 않고 상승으로 시작한 주식시장이 대통령의 담화 내용 이후 자극되어 하락세로 전환 후 한참을 찍어 누르는 모습에서 헐값이던 풋옵션 수익률이 천정부지 치솟고, 바닥이 되었을 때 다시 풋옵션 매도와 콜옵션 및 선물 매수로 기관 및 외인들이 그 수익을 다 가져가는 모습에 '왜 지난번 위클리 옵션과 오늘 네 마녀의 날에 뜬금없이 담화문 발표?'라는 의구심이 들기까지 했다.

 

작금의 경제 손실이 누구 때문에 벌어졌는데, 담화문 중간에 경제 손실을 야당 탓으로 돌리는 부분에서 화가 났다. 대통령 취임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과 국제 관계가 최악의 상황을 보이는 것이 야당 탓인가? 무슨 일만 벌어지면 전 정부 탓으로 하지 않았나?

 

오늘 하루는 정말 수장(首長)의 중요성에 대해서 여실히 느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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