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 주저리

2024년 12월 14일 - 27일차

시나브로상승 2024. 12. 14.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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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일찍 와이프와 아이는 처가로 내려갔다. 와이프가 나 혼자 있으면서 휴식을 가지라고 배려를 해주었다.

 

아이를 6시 정도 깨웠는데, 외할머니를 보러 간다는 설렘에 벌떡 일어나는 것을 보니, 역시 시키지 않아도 의지가 있다면 뭐든 해낼 수 있겠다 싶다.

 

둘을 버스에 실어 보내고 집에 와 잠을 더 많이 자고자 하였으나, 누워서 보게 된 계엄 선포 이후의 군 작전 내용을 보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이미 잠은 다 깬 지 오래다. 오늘 반드시 탄핵이 이루어지고, 대통령은 내란 혐의로 대통령직에서 내려와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오후에 예정되어 있는 탄핵 소추안에 대한 의결 전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그동안 저장을 해두었던 채용 공고를 정리하고 하나 둘 써보고자 했다. 채용공고를 자세히 읽어가며 관심 있던 것들 중에서 나의 경력과 어울리는 것을 추리고 나니 5개 정도 나왔다. 우선은 외국계 금융기관이 조금 더 어울릴 것 같고 경력 기간과 비슷한 레벨이기에 지원코자 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오전, 오후 1개씩 하여 총 2개 지원서를 마무리 지었다. 그냥 자유양식에 맞추거나, 요즘 AI 발달로 작성해 둔 레쥬메를 바탕으로 자동으로 내용을 발췌하여 작성되어 수고를 덜어주는 시스템을 갖춘 곳이기를 바랐지만, 생각보다 그렇지 못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매번 지원을 할 때마다 시간이 많이 들어가니 참 아쉽다. 그냥 내가 가진 레쥬메를 보내고 그걸로 검토받고 전형이 진행되는 시스템이면 좋겠는데, 그건 나만의 생각이겠지.

 

아무튼 좋은 소식이 있기를 바라본다.

 

오전에 한 곳을 지원을 하고 지난번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서 당첨되어 받은 맥도날드 쿠폰을 사용하려고 다녀왔다. 몇 달 만에 먹는 햄버거다. 오랜만에 먹기도 했고, 오전에 하나 지원을 마치고 먹기도 해서 그런지 맛있었다. 그렇게 우걱우걱 햄버거를 베어 물며 10년도 더 전에 미국에서 유학했을 때 집 앞과 외삼촌 학원 앞 맥도널드에서 돈을 아껴가며 먹었던 맥더블과 맥치킨 생각이 났다.

 

대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영어점수 미달로 대학원 합격이 보류되었고, 같은 시기에 영장이 나오는 바람에 군대를 가게 되었다. 이미 대학원 입학 신청 시기는 넘어섰고, 그렇게 나의 대학원 진학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게 한이 되어 영어를 좀 더 공부하고자 미국으로 영어 연수를 떠나게 되었는데, 그때 미국의 시스템 하에서 뭔가 모를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싼 돈을 내고 수업을 들어서 그런지 집중이 되었고, 집중되고 아까워 열심히 했기 때문에 재미있었나 보다. 그런데, 워싱턴 D.C. 지역은 생활비가 많이 드는 곳이다. 그렇다 보니 그렇게 1달러짜리 맥더블과 맥치킨 한 개씩 2불을 내고 끼니를 해결하며 아등바등 살았다. 생활비를 아껴 학비에도 보탰다.

 

그리고, 생활비를 벌겠다고 외삼촌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아이들의 동기를 끌어내기 위해 아이들 편에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하기 싫은 것을 먼저 해야 한다고, 그게 기초체력을 쌓는 공부'라며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던 내용이 생각이 난다. 사실 그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 나 스스로에게 했던 말이었다. 게으른 천성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스스로 잔소리를 하며 채찍질을 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나에게 채찍질이 필요한 시기다. 남은 빅맥을 마저 베어 물며 '할 수 있다' 하고 속으로 소리쳤다. 누가 듣는 것도 아닌데, 소심하게 그렇게 소리를 속으로 내어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운동을 하는 겸해서 자전거를 타고 다녀왔는데, 배도 부르고 찬바람을 헤치며 다녀와서 그런지, 매트에 누워 잠깐 마사지를 하는 사이에 잠이 들어버렸다. 탄핵 표결 시간이 다가오자 와이프가 전화를 했는데 내가 4통이나 못 받고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나중에 전화를 받으니 와이프가 노발대발이다. 혼자 집에 두고 왔는데 전화를 안 받으니 독거노인이 어떻게 된 것이 아닌지 걱정하게 되었다고 성을 낸다. 옆에 없어도 혼이 나니 큰일이다. 와이프의 큰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게 되었고, 때 마침 국회의원들의 투표가 끝이 났고, 개표만 앞둔 시점이 되었다.

 

앞서 다른 글에로 돌렸고, 모두가 다 알듯이 204표로 탄핵 소추안은 가결되었다.

 

눈물이 살짝 맺혔다. TV 너머로 나오는 국회 앞의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 국회 안의 국회의원들의 모습 등이 비치며 고마웠다. 그리고 아직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울컥했다. 그 감정, 그리고 역사적인 내용을 기록하고 싶어 컴퓨터를 켜고 글을 올렸다. 아직 헌재의 인용 여부가 남아있는 상황이지만,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인용되지 않을까 싶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라 안팎의 상황은 뭐 하나 나아진 것 없이 후퇴하였고, 문제만 생기면 전 정부 탓에 총선 이후에는 거대 야당이 반대만 한다고 징징대고 해외로 놀러 다니는 것만 봐 오느라 정치에 정을 떼어버리게 되었었다. 그러나 이번 기회로 잘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질타도 하고 잘하는 것에 대해서는 칭찬도 하는 등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이프도 같은 생각이고, 아마 많은 사람들이 다시 생각하고 관심을 가질 것 같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TV 자막에 워싱턴, 뉴욕에서도 집회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 흘러갔고, 미국 유학시절 워싱턴 사사세 모임에서 많은 분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지냈던 시절이 떠올랐다. 아저씨들, 아주머니들, 그리고 형님 누님들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도 열정적으로 고국 땅의 안녕과 사람 사는 세상을 바라고 소리치고 계실 그분들이 보고 싶었다. 가끔 페북으로 소식을 보고 있는데 세월이 흘러 이제는 흰머리도 희끗희끗하시고 주름도 패이고 하셨던데, 지금 워싱턴 날씨는 한국처럼 찬바람이 매섭지는 않은지, 추운 날씨에 어디에서 집회를 하고 계실지 등등 생각이 나더라.

 

그땐 틈만 나면 사무실에 모이자고 난리였다. 이명박 정부에서 왜 그렇게 노무현 정권에 대해 트집을 잡고 해코지를 해댔는지? 전 장관이며 총리까지도 괴롭히고. 허망하게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각날 때면 번개가 이루어졌다. 집에서 바라 바리 음식을 해서 싸 오시고, 나 같은 젊은 친구들은 맛있는 음식에 술이 달디 다니 개근상이다. 다들 사무실에 신문지 깔고 앉아 막걸리와 두부 김치 한 접시를 후딱 해치우고, 청년 친구들의 신명 나는 사물놀이 한 판을 즐기고 나면 이제 시작이다. 밤새워 술을 마시고 새벽에 동이 트면 그제야 털레털레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가끔 인스타를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상을 보게 된다. 대통령 출마 전 후보로서 읍소하던 모습, 대통령 당선 이후 국민과의 대화를 서슴지 않고 나와 토론하던 모습 등 최근에 부쩍 많이 떠 보게 된다. 모든 것을 다 잘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경험을 했던 대통령들 중에는 가장 본받을 점이 많았고, 정치에 가장 관심을 많이 가졌던 때가 아닌가 싶다. 갑자기 열우당 형님 보고 싶네. 노무현 대통령을 끔찍이 사랑했던 형님. 그리고 우리 천지음 동생들. 덕분에 사물놀이 제대로 배우고 신명하네 놀았다. 워싱턴 DC 가게 되면 연락하고 꼭 봐야지. 조지메이슨 앞 버거 집 아직도 버팔로윙 10조각에 5불이려나? 먹고 싶네.

 

오늘은 그냥 이렇게 혼자 있으면서 오롯이 와이프와 아이 신경 쓰지 않고 나의 현재, 그리고 나의 과거 시간을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아침에 하고 싶은 일도 많았는데 욕심이었다. 반의반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나만의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내일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올라올 두 사람을 데리러 가야 하니 오늘은 일찍 잠을 청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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