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 주저리

2024년 11월 28일 - 11일차

시나브로상승 2024. 11. 29.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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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읽은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에서 김종원 작가는 매사에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계속 반복적으로 나오는 내용이다 보니 뇌리에 박혔나 보다. 어제 강설로 인해 단지 내 길은 수북이 쌓인 눈으로 뒤덮여 있어 걷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단지를 관리하고 있는 경비 아저씨와 단지 사무소 직원분들이 제설 작업에 한창이셨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제설하는 모습과 제설 후 깨끗해진 도로를 찍어 아파트 커뮤니티에 감사의 말씀을 올렸다. 글을 올린 지 10초도 되지 않아 부모님이 계신 옆 단지 아파트 커뮤니티 앱에서 소통 공간에 새 글 알림이 떴다. 나의 감사의 말씀과는 정 반대의 제설작업이 왜 제대로 되지 않는가에 대한 질의의 글이었다. 부모님 집에 걸어가는 도중 보니 우리 아파트 단지보다 더 많이 제설작업이 되어있었고, 더 많은 분들이 나와서 작업을 하고 계셨다. 그런데도 사뭇 다른 뉘앙스를 띈 글의 내용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아파트 커뮤니티 앱에 올라온 두 가지 다른 시선

그리고 달린 댓글을 보니 신기한 점이 발견되었다. 나의 포스팅에는 감사하다는 내용이 달렸고, 다른 글에는 불만을 토로하는 내용이 달렸다.

그 다른 시선의 연장선인 댓글들
 
 

둘 모두 오전 10시가 좀 안 된 시간에 쓰인 글이다. 오전 10시라면 당직 근무자들이 일을 하셨거나, 아니면 눈길을 뚫고 출근을 한 직원분들께서 제설작업을 하셨을 것이다. 10시 이전에 아이들 학교 갈 때 또는 출근할 때 치워져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밤사이 내린 눈은 첫눈으로 제설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한 30cm가 넘는 강설이었다. 나는 10시 전에 작업이 시작되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지나는 길에 감사하는 말이 먼저 나와 인사를 드렸고, 앱에 사진을 찍어 고생하시는 것을 알리고 함께 감사함을 표현하길 바라는 마음에 올렸다. 긍정적인 제스처는 또 다른 긍정적인 반응을 낳고, 부정적인 제스처는 또 다른 부정적인 반응을 낳는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아이 생일을 전후로 매년 가족사진을 찍는다. 모레 사진을 찍기로 하여 머리를 깎고자 헤어숍에 다녀왔다. 지금 인연을 맺고 있는 디자이너는 6년 정도 인연을 맺고 있다. 갓 시작한 디자이너일 때부터 우리 가족의 머리를 해주고 계시는데, 이번 가을에 새로운 매장의 원장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헤어 프랜차이즈의 최연소 팀장이자, 우리 지역 1등 디자이너로서 지내다가 프랜차이즈 대표께서 지목하여 새로 문을 여는 매장의 원장으로 앉혔다. 회사에서 반, 본인이 반을 대어 매장을 열게 되었는데 접근성은 전에 있던 대형마트 건물 내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이제 한 3개월 남짓 되어가기에 자리가 잡혀가는지 여쭤보았다. "한 3년은 걸려야 안정화가 될 거 같아요."라고 답을 하셨다. 답을 듣고 보니 항상 밝고 자신감 넘치는 얼굴이 조금은 수척 해진듯하다. 전에 지역 1등 디자이너로서 승승장구하다 맡게 된 최연소 원장이라는 타이틀이 기분 좋았겠지만, 새로운 도전이 전과 비교했을 때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어졌을 것 같다. 사실 저 말을 듣고, "조금만 지나면 금세 괜찮아질 거예요, 힘내세요"라고 말을 하려다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힘든 사람에게 힘내세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전을 하였어도 나처럼 계속 찾아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분명 또 다른 고객들이 찾기 시작할 것이기에 3년이 아니라 내년 정도면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30대 초반인데 원장으로 지목된 것은 분명 대표의 눈에 맡길만한 무언가가 보였을 것이고, 실제로 6년이라는 시간을 알고 지내면서 바라본 바 굉장히 싹싹하고 실력 또한 좋아 반드시 그리될 것이라고 확신이 든다. 얼른 자리를 잡고 다시 예전처럼 밝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머리를 깎고 난 후 주유소로 향했다. 이쪽에서 주유하는 것보다 리터 당 140원이나 차이가 나기에 온 김에 탱크를 가득 채우고자 했다. 옆에서 임시 번호판을 단 BMW 한 대가 내 앞을 끼어들었다. 전 같으면 그렇게 끼어들면 육두문자를 내뱉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냥 허허 웃고 속도를 줄여 간격을 벌린 후 가던 길을 갔다. 저 앞에 주유소가 보였고 깜빡이를 켜다 그 BMW도 주유소로 들어간다. 주유를 하려고 내리니 다른데 세웠던 BMW가 내 옆으로 온다. 순간, '아까 끼어든 거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오나?' 생각했는데, 차에서 내리는 사람은 외국인이었다.

 

"I don't know how to use this. I need to fill up the petrol. Could you please let me know which one petrol is?"

 

예전에 어디선가 영국 계열에서는 휘발유를 Petrol이라고 한다는 것이 생각났다. 아까의 상황은 생각도 나지 않고 그저 이 사람에게 빨리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뿐이다. 그런데, 새로 뽑은 BMW 임시 넘버 달고 다니는 차라 혹여 혼유를 할까 걱정이 들어,

 

"Let me see. Could you please open the fuel cap? I'd like to check what you require once more."

 

주유구를 열어보니 95 옥탄가 이상의 고급 휘발유를 넣으라고 표시가 되어있다.

 

"It seems to require gasoline, right?" 하고 물으니 맞다고 한다. 그래서, 노란색 버튼이 휘발유를 뜻한다고 알려주었다. 타지에 와서 새 차 뽑고 기분 내는데 영어로 표기된 것이 없으니 얼마나 당황했을까? 그래도 휘발유 버튼 하나만 알려주니 알아서 주유를 다 하고는 고맙다고 하고 부웅하고 떠나더라. 그래 오늘 착한 일 두 개 째다.

 

집에 돌아오는 길 옆에 소복이 쌓여 아직 녹지 않은 눈을 보니 크리스마스 캐럴이 듣고 싶어져 유튜브로 캐럴을 검색하니 정말 많은 리스트가 뜬다. 불현듯, AI를 활용하여 저작권이 없는 노래를 선별하여 유튜브에 올려놓아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에 대해 소개했던 유튜브 콘텐츠를 본 기억이 났다. 나도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하여 한 번 연습해 볼까 생각을 했고, 밤늦게 돌아온 와이프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와이프는

"궁극적인 목적이 돈이냐?" 질문하였고, 나는

"그렇지? 결국은 경제적인 부분을 신경 써야지."라고 답했다.

와이프의 대답은 긍정적이지 않았다. 돈을 목적으로 하는 것에 대해 당장은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AI를 경험해 보려고 하는 것까지는 되지만, 돈을 벌 목적으로 달려드는 것은 주객이 전도될까 걱정이 되는 듯하다. 유튜브 콘텐츠로 돈을 버는 것을 당장 지향하는 것은 아니지만, AI를 공부하고 경험해 보는 용도로 시간 날 때 조금씩 사용해 봄으로써 AI 활용 능력을 키워보긴 해야겠다.

 

오늘은 아이가 무척 피곤했는지, 태권도 다녀오고 난 후 일찍 자고 싶단다. 내일 뮤지컬 공연이 있기에 딱 한 번만 연습하자고 하고 연습을 한 후 침대에 누웠다. 막상 침대에 누우니 잠이 안 온단다. 인스타에서 어느 신경정신과 교수님께서 잠을 빨리 들기 위해서 생각에 집중을 해 뇌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아닌, 온전히 심장에 집중을 하고 심장 소리를 가만히 느끼고자 하면 금세 잠에 들 수 있다고 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아이 손을 심장 높이 가슴에 얹혀 주고, 요가할 때 선생님들 말투처럼 나지막한 목소리로,

"오늘 하루 동안 최선을 다하고, 많은 것을 공부하고, 내일 있을 뮤지컬 연습까지 하느라 고생 많은 하루였어요. 지금까지 하루 동안 바쁘게 달려온 뇌에게 휴식 시간을 주고 우리 손을 가슴에 얹고 심장 소리를 느껴봐요. 우리가 밤에 자는 사이 혼자 열심히 일을 하며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는 심장에게 고맙다고 말해봐요. 심장은 '콩닥콩닥'이라고 이야기해 줄 거예요. 긴장을 풀어내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다 보면 금세 잠에 들 거예요."

정말 아이는 1분도 채 되지 않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신기하다. 요즘 잠이 잘 오지 않으면 나에게 써먹는 방법인데, 아이에게도 해주니 쉽게 잠이 들다니, 그 신경정신과 교수님 명의다.

 

아이가 잠에 일찍 들어 책을 꺼내 들었다. 아, 그 신경 정신과 교수님께서 우리나라의 집은 불필요한 밝음을 강조한다며, 빛이라는 것은 정말 필요한 곳에 적절한 양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내가 필요한 공간에 필요한 적정한 양의 빛이라. 천정의 등을 다 켜는 것이 아닌 스탠드의 불 하나 정도 켜고 은은한 빛만 있다면 오히려 집중력을 높일 수 있고, 잠자리에 누워 금세 잠들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미국에 있을 때, 정말이지 천정에 등도 없고, 구석에 스탠드를 세워두고 그 빛으로 지내는 것을 보며 '나라 땅덩이가 커서 전기가 없나? 왜 이렇게 어둡고 침침하게 살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오히려 건강하게 사는 방법이라니. 안 쓰고 있던 스탠드를 소파 옆에 옮겨두고 모든 불을 끈 채 스탠드 하나 켜고 캐럴을 틀어 놓고 책을 읽으니 술술 읽힌다. 집중력도 더 좋아지는 듯하고. 정말 그 교수님 명의다.

 

새로 읽기 시작한 책은 또 김종원 작가의 책 「부모의 어휘력」이다. 부모의 어휘를 통해 아이들의 어휘를 확장해 주고,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으며, 긍정적인 언어로 긍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밑거름을 주는 것을 강조하는 책이다. 어쩜 그리 나의 부족한 어휘를 콕콕 집어내는지. 총 126가지의 필수 어휘의 책 전반을 통해 소개된다. 1장을 막 읽었을 뿐인데, 내가 잘못 사용하고 있는 어휘들로 채워져 있고, 어떤 어휘로 대체되어야 하는지 잘 짚어준다. 지금이라도 바꿔 써야 할 어휘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에 감사하다. 지난번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의 긍정적인 삶을 그대로 글로 옮기는 것에 대하여 강조했던 내용들이 지금 읽고 있는 「부모의 어휘력」에서도 강조된다. 이전 책에서는 나에게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 책에서는 나보다는 아이를 위하여 부모가 제대로 익히고 써야 할 어휘에 대해 설명한다. 정말 나에게 필요한 책이다. 빨리 읽고 제대로 된 뉘앙스와 제대로 된 표현을 아이의 어휘, 사고 확장에 도움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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