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정리하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나열해 보니 오늘 하루 일과에서 다양하게 사색했던 내용들의 연관성이 매우 부족하다. 처음에 이것들을 어떻게 엮어야 하고, 사고의 흐름으로 이어갈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허나, 사고의 흐름 자체가 유려하게 떠올랐던 것이 아니고, 전부 단절되어 있는 하나의 시선, 사건 또는 객체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니 애초부터 이를 연결하고자 마음을 먹었던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각설하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바람이 매우 심하다. 창문을 계속 두드리는 강풍에 밤사이에 재난 문자도 와 있는 것을 보니 바람이 대단했나 보다. 아침에 아이를 셔틀버스에 태우고자 1층 문을 나서니 지난밤 강풍에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다. 비까지 동반한 강풍이어서 그런지 유독 낙엽이 많이 쌓여있다. 그리고 나뭇잎들은 더 붉은색에 가까운 색이다. 그제 집에서 바깥을 쳐다봤을 때 아직 햇볕이 잘 드는 곳은 초록색 잎이 남아있기도 해서 자연스러운 그러데이션을 즐길 수 있었는데, 오늘은 유독 주황색과 붉은색이 도드라졌다.
점점 앙상해지는 나무를 보며 이렇게 한 해가 이렇게 가고 있구나 싶다. 자연히 올해를 돌이켜 보게 된다. 올해 정말 다사다난한 한 해이다.
연초부터 회사의 대외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많이 배우고자 노력했었다. 허나 리더로서 부족한 점이 많다 보니 프로젝트의 진행과정은 녹록지 않았고, 점차 타 이해 당사자들과의 다툼도 많았다. 서로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프로젝트의 미래가 장밋빛이 아니었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면피를 하고자 부단히 애썼던 것 같다. 결국 프로젝트는 계약 해지라는 결론에 닿았다. 프로젝트의 실패라는 멍에를 누군가 짊어져야 했고, 그게 내가 되었을 때 많이 당황했으며, 왜 모두가 욕을 하는 사람이 아닌 내가 되었을까 하는 원망도 했다. 그러나, 지금 와 생각해 보니 그 분야에서 전문성이 가장 떨어지는 내가 책임을 지고 그만두는 것이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가장 옳은 결정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회사를 그만두게 된 후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을 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지금보다 현저하게 떨어지는 집중도를 보였다. 일을 그만두게 되니 경제적인 부분에 신경을 쓰게 되고, 또 갑작스레 많아진 시간에 느슨해지기도 했다. 그 이후 경제적인 부분에 타격을 입게 되기도 했고, 그 일로 몇 달간 넋이 나간 채 시간을 보내왔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졌고, 육체는 점차 힘을 잃어갔다. 가만히 있어도 몸이 떨렸고, 지난날 생각에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많이 힘들었다. 2024년은 대운의 시기라 했거늘, 그렇지 않은 현실에 더욱 속이 상하고 견디기 힘들었다.
와이프에게 힘든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건넸고, 한참 이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와이프는 한 번 이 번 기회에 새롭게 태어나기를 주문했다. 그렇게 매일 내가 지킬 수 있을 작은 목표들로 하루를 채우고, 그것을 달성해냄으로써 다시금 자신감을 키움으로서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자생력을 키워야 나가는 것으로 시작을 하고 있다. 독서, 운동, 규칙적인 식사와 하루의 정리를 블로그에 올리는 네 가지 작은 목표들을 매일 지킴으로서 소소하지만 목표의 달성을 통해 보람을 느끼게 되었고, 조금씩 나쁜 생각들이 사라져 갔다.
9일 차로서 100일 목표의 10%도 채 되지 않았지만, 긍정적으로 바뀐 점을 나열해 보자면,
첫째.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이 나아졌다. 요가를 함으로써 명상의 시간을 통해 나쁜 생각들이 많이 사라지게 되었고, 나를 점점 알아가는 시간을 늘리게 된다. 그리고 오롯이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다양한 잡념들을 훌훌 날려버리게 된다. 육체적으로는 요가를 하는 동안 안 쓰던 근육들을 사용함으로써 뻣뻣했던 몸이 유연해짐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코로나에 걸린 후에 왼쪽 종아리에 큰 근육 뭉침 증상이 있었는데, 어제 사우나를 사면서 해당 부위의 뭉침이 사라졌음을 알게 되었고, 서 있거나 앉아 있을 때 등에 힘이 생겼다는 것이 느껴진다.
둘째, 집 안 내 너저분한 곳이 많이 줄어들었고, 특히 부엌이 많이 청결해졌다. 전에는 그냥 정리하지 않고 너저분하게 쌓아두거나 흩뜨려진 채 놓인 것들을 그대로 놔두었다면, 지금은 지나가는 길에 간간이 정리를 한다. 특히, 부엌에 쌓아둔 설거짓거리를 그때그때 세척하여 건조대 또는 식기세척기에 바로 넣고, 요리할 때 정리를 함께 하며 하다 보니 와이프가 항상 강조하는 청결한 부엌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셋째, 사소한 것에 짜증을 내던 나의 모습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와이프와 아이의 요청 사항에 군말 없이 행동으로 즉각 옮기는 경향이 생겼다. 그렇다 보니 와이프와 아이도 나의 요청 사항을 바로 해준다거나, 또는 알아서 배려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넷째, 가족 간 대화의 시간이 많이 늘었다. 그리고 서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주된 내용이 지시, 불만 사항 토로, 짜증에서 서로의 현재 상황에 대한 이야기와 고민거리, 그리고 최근의 즐거운 일과 학교생활 등 바뀌는 등 매우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그렇다 보니 우리 가족의 웃는 시간이 많이 늘어났다.
이처럼, 별것 아닐 수 있는 사소한 긍정적인 변화들은 하나하나 쌓여 커다랗고 매우 의미 있는 긍정적인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나 하나의 변화로써 이렇게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사실에 지난 11개월의 나의 자세를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 90여 일간의 변화가 어떤 긍정적인 또 다른 변화를 가져오게 될지 기다려지고 설레게 만든다.
오늘은 와이프가 건강검진이 있어 회사를 가지 않았고, 다른 병원에 들러 돌아오느라 약간 늦긴 했지만 늦은 점심을 함께 했다. 와이프는 요 며칠 계속 바쁜 관계로 집에서 밥을 못 먹었던 터라 그동안 해둔 반찬을 먹어보질 못했다. 그래서 그동안 해둔 것들을 하나하나 접시에 담아내어 놓으니 총 8가지가 나왔다.

건강검진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며 기다렸던 터라 늦은 점심의 시장이 반찬이었을 것이다. 와이프와 함께 점심을 먹으니 나 역시 더 맛있게 먹었다. 밥을 먹으며 아침 내내 내일 아이의 생일 답례품 포장을 한 것을 보여주고, 금요일에 있을 뮤지컬에 들고 갈 응원봉 배송 온 것을 뜯어 보여주며, 아이가 행복해할 모습을 상상해 보고 웃음 짓게 되었다.



내일은 아이의 생일이다 보니 미리 주문을 해두었던 생일 케이크 만들어주는 과자점에 전화를 해 배송 시간을 체크하고 학교 측에 전달하였고, 미리 준비를 해두었던 답례품들을 하나하나 꺼내 소포장으로 나누어 준비를 해두었다. 답례품으로 여느 아이들과 같이 사탕과 과자로 할까 했었다. 와이프가 회사 내 다른 엄마와 이야기를 하던 중 아이들이 커가며 많이 다치니 밴드 같은 것 주면 좋겠다는 말에 일반 밴드보다는 습윤밴드가 좋을 것 같아 준비했다. 그리고, 딸아이가 요즘 부쩍 건조해지고 차가워진 공기에 밤에 쌕쌕 거리는 소리를 내며 잠을 자 호흡기 패치도 주문했다. 2가지만 주기는 조금 아쉬운 감이 들어,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산리오 캐릭터 스티커를 주문하여 별도 소포장을 하여 이븐 하게 나누어 넣었다. 아이에게 내일 친구들에게 생일 축하해 줘서 고마워하면서 하나씩 나누어 주라고 하니 신이 났다.
지금까지 생일이라고 하면 케이크 사서 초를 부는 것에만 온통 관심을 갖는 등 '생일 = 초 부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아이가 매일 같이,
"아빠 난 언제 태어났어? 몇 밤 자면 내 생일이지?" 하며 본인의 생일을 무척이나 기다리는 모습을 보였다. 무엇이 바뀐 것일까? 전에는 신경 쓰지 않던 것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본인에 대한 정체성이 자리 잡기 시작은 한 것인지? 아니면 친구들이 학교에서 생일 케이크를 불며 조촐한 파티를 하고 선물을 주고받는 것을 본인도 하고 싶은 것인지? 이유를 물어봐도 아직은 대답을 할 줄 모르지만, 내일 생일을 보내고 온 후에 다시 한번 물어봐야겠다. 요즘 본인을 조금 드러내고 싶은 모습을 보이는 것의 연장선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집에 있지 않느라 몰랐던 와이프가 오늘은 회사를 가지 않아 온전히 집에서 시간을 보내니 인테리어 공사로 들리는 소음과 오늘따라 유난히 강하게 부는 바람에 창문이 흔들리는 소리가 거슬렸나 보다. 며칠 전 엘리베이터에 25일부터 일주일 간 소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있었기에 으레 소리가 나겠지 생각해서 인지 그동안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신경을 쓰고 있고, 그게 거슬린다면 소음 공해가 되겠지만, 신경 쓰지 않고 다른 일에 몰두하게 되면 그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소파에 누워 눈을 지그시 감고 있으면 그 소리가 백색 소음이 되어 낮잠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어떠한 하나의 이벤트가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9일 차의 변화의 긍정적인 하나의 면일까? 적어도 짜증이 나거나 거슬리지 않았으니, 긍정적으로 대하고 있었구나 하고 미소 지어 본다
저녁 대신 고구마를 까먹으며 와이프는 '노화'에 대해 요즘 신경 쓰고 있다는 말을 했다. 내가 고구마 껍질을 까다가 고구마를 떨어뜨리자 점심에 밥을 먹다가 흘리는 것을 다시금 지적하며 한 말이라 괜히 뜨끔했다. 나의 이야기보다는 와이프 손윗 상사들의 대표이사에 대한 평가가 예전과 달리 부정적으로 바뀌었고, 그 상사분께서 '나이가 들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가끔 치매가 아닌가 의심이 든다'라는 말을 했다는 소리에 조금 놀랍기도 하다. 와이프는 그 부분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 듯한 눈치였고, 나 역시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 편이 맞다고 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매우 배울 점이 많은 동경의 대상이자, 존경해 마지않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말씀을 하셨던 것 같은데, 이제 와서 힐난의 대상이 된 것은 무슨 일이 있어서일까? 비단 이러한 태도는 와이프의 직장 내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닌 내 주위에서도 심심치 않게 벌어졌던 일이다.
와이프와 대화 도중 나의 생각에 대해서 전달을 했다.
나와 상사 간의 거리가 넓으면 넓을수록 그 사람은 그 지위에 올라가기 위해 내가 또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했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동경 또는 존경의 대상으로서 그의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과 나의 격차가 점점 줄어들게 되면서 그 선입견은 산산조각이 나버렸을 것이다. 점점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못하는 것을 점차 발견하게 될 것이다. 회의에 점점 동행하게 되면서 긍정적으로 그려왔던 상상은 그렇지 않은 불편한 사실에 하나 둘 사라지게 되어, 불편하고 부정적인 현실에 마주하며 동경하고 존경했던 그 사람이 점점 만만해졌을 것이다.
또한, 나와 그 사람과의 거리가 먼 경우 나에게 직접적으로 업무 지시가 떨어지는 횟수가 적을 것이고, 업무 지시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불편한 이야기를 접할 기회가 적었을 것이다. 하지만, 점점 그 사람과의 거리가 가까워지게 되면 직접적으로 대면할 기회가 많아지게 되고, 당연히 불편한 이야기를 듣거나 실망하는 상황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다. 더군다나 내 주위에 함께 승진을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바라보는 불편한 대상이 공존하게 되니, 하나의 적을 대상으로 모두가 대동단결하며 동맹을 맺게 되다 보니, 그 불편한 이야기는 점차 하나의 정설처럼 쉽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씁쓸한 마음에 와이프에게,
"당신은 남들과는 좀 다르지 않아? 직접 보고 느낀 것을 토대로 사실에 입각한 판단을 하는 사람이잖아. 남들이 뭐라고 한다고 해서 선입견을 가질 필요도 없고, 가져서도 안되고, 본인이 직접 보고 느낀 자기의 판단을 믿어요. 난 자기의 판단이 그 누구의 판단보다 정확하고, 신뢰도가 높다고 생각해."
와이프의 생각도 그러한지, 고개를 끄덕이며 쉽게 동의하는 듯했다. 'Yes!'
전과 달리 대화를 하면서 이야기를 전달할 때, 두서없이 이야기를 하거나,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른 채 안드로메다로 가는 경우가 줄었다. 그리고, 전보다는 말을 더 간결하게 하고 천천히 말하려고 하는 듯하다. 김종원 작가의 책을 읽으며, 반복적으로 강조해 나오는 말들, 그리고 책을 읽고, 며칠 되지 않았지만 생각을 글로 적는 습관을 들이면서 생긴 긍정적인 변화가 아닐까 싶다.
책 한 권을 읽는 동안 어느새 형광펜 한 자루를 다 썼다. 중요하다 생각되는 것에 밑줄을 그어 가며 읽었는데, 내게는 많은 내용들이 신선하고 중요하게 느껴져 줄을 많이 치고 읽다 보니 금세 한 자루의 형광펜을 다 쓰게 된 것이다. 책에 담긴 내용을 계속 머릿속에 두고 염두를 하는 통에 전에 별것 아닌 것이라 치부했던 것들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내가 관찰하거나 지켜봤던 것들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찾거나 질문을 던지는 등의 사색의 시간이 늘었다. 그냥 지나쳤을 일들도 핸드폰에 메모를 하거나, 사진을 찍어 남기는 등 기록의 빈도와 시간이 늘었다.
처음 1일 차 일기를 쓸 때 하루가 길어졌다고 했다. 9일 차가 된 지금 1일 차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하루기 길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아이를 재우다가도 깨서 이렇게 못 쓴 일기를 쓰게 되고, 낮에 낮잠이 몰려올 때 요가 매트를 깔고 운동을 하며, 전에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때웠다면, 형광펜을 들고 책을 읽는다. 활동량이 적어 허기를 잘 느끼지 못했는데, 점심이 되면 배가 고파 뭐라도 차려 먹든 주어 먹든 한다.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이렇게 작은 변화들이 생겼다. 태평양 한가운데 나비가 날갯짓을 하게 되면, 그렇게 만들어진 작은 파도가 대륙에 닿으면 거대한 쓰나미가 될 수 있다는 나비효과 이론이 있다. 나 스스로의 변화도 변화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 가족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다. 앞으로 나부터 내가 먼저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함께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