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아이 생일 전후로 하여 가족사진을 찍으려고 한다. 아이의 성장 과정을 담고자 함이다. 그 어느 때보다 올해 아이가 많이 성장을 했다고 느껴진다. 말을 잘하게 되었고, 말을 잘하게 되면서 또래와 잘 어울리게 되어 사회성도 많이 늘었으며, 학습 능력과 자아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가족사진을 찍는다고 어떤 모습으로 찍고 싶냐 물었을 때 머리를 풀고 길게 늘어 뜨려 엄마처럼 하고 싶단다. 요즘 부쩍 엄마처럼 하고 싶어 한다. 머리도 스스로 빗고 묶어 보려 하고, 옷도 본인이 골라서 입으려 하고, 거울을 보며 이쁜 척도 해가며 부쩍 외적 모습에 신경을 쓴다. 그래서 올해 생일 선물을 어린이 화장 세트로 준비해 주었고, 아이는 선물을 받자마자 얼굴에 덕지덕지 찍고 바르고 분주했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가족사진을 대체할 이벤트들이 있어 건너뛰었지만, 내면 '지열 군 스튜디오'에서 가족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모님께서 우리 가족이 기억나셨는지 전에도 여기서 찍고 있지 않았냐고 여쭤보셨다. "많이 컸네?" 하고 말씀도 주시는 것을 보니 아마 아이를 기억하고 계신 것 같았다. 누군가 나 또는 우리를 기억을 해주고 있다는 사실은 기분 좋은 일이다. 설사 그것이 서비스업의 본질이 아니냐 질문을 하더라도 말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그 순서의 차이를 매기는 것이 애매하나 어쨌든 로열티를 가진 고객으로서 각인되었다는 사실은 서로에게 득 되는 일 아닐까 싶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충성도 높은 고객이 지속적으로 방문을 하니 좋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억을 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누군가 신경을 써주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매년 사진을 찍다 보니 대부분의 촬영 콘셉트는 두루 경험한 듯하다. 그래서 오늘은 촬영을 하며 어떻게 찍을까를 사진작가님께서 고민하시면서 찍었다. 여러 가지 콘셉트를 적용하여 찍기도 했고, 추가로 아이 사진을 따로 부탁하여 전보다 시간은 조금 더 걸려 촬영을 했다. 오늘 바로 촬영한 사진을 보내주셨는데, 아이가 많이 컸다는 게 느껴진다. 전에는 사진작가님의 요구사항을 잘 알아듣지 못하였다면, 이번 촬영 때는 작가님의 요구사항을 잘 알아듣고 반응을 보이며 촬영을 마쳤다. 아이가 아가 때부터 듣는 큰 장점 중 한 가지가 바로 '미소'이다. 항상 잘 웃는 편이고, 웃을 때 특히 많이 이쁘고 귀엽다. 오늘 사진 찍는 동안에도 웃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잘 보여주어 재미있고 예쁜 사진들이 많이 나왔다. 특히, 혼자 찍은 사진에서 다양한 느낌이 묻어났다. 예쁜 사진, 우스꽝스러운 사진, 호기심 많고 지적인 사진, 귀엽고 깜찍한 사진 등 다양한 사진이 있다. 가족사진도 가족사진이지만 아이의 사진이 유독 맘에 든다. 그리고, 올해 사진에 두드러진 점 다른 한 가지는 내가 살을 많이 빼어 전보다 배가 많이 들어가 자연스러운 사진이 많이 나왔다는 것이다. 얼굴도 많이 갸름해지고 턱 살도 없어져 확실히 전보다 보기 좋다. 계속 잘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요즘 우리 가족은 부쩍 달리는 느낌이다. 와이프는 회삿일로 바쁘고, 아이는 뮤지컬 공연 준비와 학교 숙제 및 책 읽기 과제로 인해 바쁘고, 나는 아이랑 함께 공부를 하고, 나 스스로 새로운 삶의 태도를 지니기 위해 모두 바쁘게 지내고 있다. 이렇게 정신없이 바쁜 가운데 여유를 즐기는 것이 좋다. 그래서, 아침에 오늘 가족사진 촬영 후 영화를 보면 좋겠다 했고, 와이프도 좋은 생각이라며 '위키드'를 예매했다. 뮤지컬 영화이기도 하여 아이가 좋아할 것 같았기 때문에 선택을 했다.
3시간이라는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매우 재미있다. 뮤지컬 영화 특유의 처음 도입부에서 보이는 익숙지 않은 빠른 전개와 큰 스케일로 인해 기승전결의 기 단계에서 큰 에너지가 들어와 준비가 채 되지 않은 채 당황스럽기도 하고 기가 빨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금세 영화의 전개에 빠져들게 되어 템포가 점차 맞춰지게 되자 좀 전의 느낌은 사라지고 온전히 집중하게 되었다. 오즈의 마법사를 모태로 하여 초록색 서쪽 마녀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 내용에 대해 사전 정보가 많지 않은 채 보았지만, 오히려 그 부분이 내용에 더 몰입하고 영화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주, 조연 및 뒤를 채워 주고 있는 단역 배우들 모두 연기 수준도 높고, 화면 전반의 영상미, 그리고 엘파바와 글린다의 기숙사 방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특히 이 영화에 집중하게 해주는 요소들이다. 김세윤 영화평론가는 '해리 포터 이후 마법 이야기를 다룬 영화 중 재미있게 봤다'라고 했다. 아직 파트 1이기에 마법을 다루는 모습은 많이 나오지 않아 마법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나는 보는 내내 '맘마미아', '레미제라블', '위대한 쇼맨' 등의 뮤지컬 영화들을 떠올리며, 내가 뮤지컬 영화를 꽤 재미있게 느끼며 보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자막으로 봤고, 이번 작품 더빙을 뮤지컬 배우들이 많이 참여를 해 더빙으로 보는 것도 좋다는 평들이 많아,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더빙으로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다시 보고 싶다고 느낀 영화는 '비긴 어게인', '탑건 - 더 매버릭' 두 개뿐이었는데, 더빙 퀄리티가 높다는 점이 작용하긴 했으나, 정말 오랜만에 한 번 더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 영화이다.
아침 일찍부터 바삐 움직이느라 아이는 영화를 보기 전 졸리다고 칭얼대었고, 초반에는 언제 끝나는지? 집에는 언제 가는지 물어보는 등 지루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지만, 3시간이라는 러닝 타임을 졸지 않고 끝까지 봤다. 아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막에서 나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물어보기도 하는 등 집중도가 높아진 것을 보니 재미있게 본 듯하다. 다시 한번 더 봐도 되겠냐고 물어봤을 때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더빙으로 본다면 같이 가야겠다. 그리고 뮤지컬 위키드의 클립들도 찾아서 보여줘야겠다. 'Popular'와 'Defying Gravity' 두 곡은 특히 유명하고 이번에 정선아, 박혜나 두 배우가 한국어 버전으로 부른 넘버도 올라와 있으니, 함께 불러보고 연습해 봐야지.
저녁은 아버지께서 근처에 사는 사촌 동생 두 명을 불러 밥을 사주신다 하여 함께 먹었다. 13살 15살 차이가 나는 녀석들이라 말을 나눌 기회가 매우 적었던 녀석들인데, 이제 다들 성인이 되어 회사를 다니고 군에서 장교를 하고 있는 녀석들이라 이제는 술 한 잔을 함께 할 수 있다.
아버지는 사람들을 잘 챙기신다. 먼저 연락을 하고, 모임을 주선하기도, 참여하기도 잘하신다.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쉽게 사람을 끌어당긴다. 우연히 사촌 동생이 근무하고 있는 지역이 근처라는 이야기를 들으셨고, 곧바로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하시더니 조만간 보자고 말씀을 하셨을 때가 지난 추석 때다. 그리고 지지난 주 잠깐 올라오셨을 때 나에게 연락을 돌려놓으라 말씀을 주셨고 오늘 날짜를 잡아 이렇게 모였다. 할아버지 때부터 다들 잘 모이고, 잘 지내온 터라 사촌 동생들도 아버지의 부름에 쉬이 응해준 듯하다. 아버지는 말 재주도 좋아 농담도 잘하시고, 본인 이야기를 많이 하기도 하지만, 잘 듣고 응해주시고 조언도 많이 해주시는 편이라, 오늘 본 사촌 동생들 외 다른 녀석들까지도 잘 모인다. 오늘 이런 자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섭섭할 녀석도 있을 것이다. 특별한 이슈 거리가 있어 오라 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 밥 한 끼를 먹는다는 것은 밥에 진심인 한국인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미일 수 있다. 요즘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밥 한 끼를 먹으며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근황을 알 수 있고, 그 외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술안주가 되었다. '너무 자주 보지는 말고, 간간이 이런 기회 자주 갖자'라고 다소 모순이 있는 듯한 농담이 섞인 말씀은 아버지의 특유의 화법이다. 반어법을 굉장히 즐기시는 터라, 처음 보거나 자주 보는 사이 아니면 오해도 할 수 있는 그런 화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하지만, 그게 쉬이 고쳐질 것이었으면, 아버지 특유의 화법이잖아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 거다.
아버지 덕분에 목요일부터 3일간 폭식을 하여 배가 나왔다. 한동안 누었을 때 신물이 올라오지 않았었는데, 신물이 올라와 잠을 깼다. 안 마시던 술도 마시고 해서 집에 돌아와 일찍 쓰러져 잠이 들기도 했다. 속이 쓰려 잠에서 깨었고, 알카셀처를 먹고 나니 속이 금세 편해졌다.
운동과 독서는 하지 못하였다. 하루의 일과 정리마저도 하지 못하면 안 될 것 같아, 컴퓨터를 켜고 하루의 일과를 정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