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 주저리

2024년 12월 15일 - 28일차

시나브로상승 2024. 12. 16.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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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의 상황은 정반대이다. 아침부터 분주하다.

 

이른 아침 기차를 타고 올라오고자 와이프와 아이는 나보다 어 이른 시각에 일어났을 것이다. 씻으러 가기도 전에 지하철역에서 기차역으로 가기 전 아이의 모습을 찍어 보냈다. 정신없는 하루가 될 것을 암시하는 사진이다.

 

부랴부랴 정리를 하고 와이프와 아이를 데리러 기차역으로 향했다. 일요일 아침의 도로는 한산하다. 아침 일찍부터 기차역 주변에는 배웅을 나온 사람들이 많이 있더라. 가족, 연인, 친구를 데려다주러 또는 데리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나올 시간이 한참을 지난 듯한데도 여전히 깜깜무소식이기에 전화를 해보니 수화기 너머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저 멀리 와이프와 아이가 보여 가보니 아이는 여전히 울고 있다. 이유를 물으니,

"엄마가 내 종이를 밟아서 찢어졌어."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이가 가지고 있던 종이가 바닥에 떨어졌고, 아이가 주우려는 순간 와이프가 밟아 모서리가 조금 찢어진 듯하다. 엄마는 기차에서 내리기 전 가방에 넣으라고 했지만 급구 손으로 들고 가겠다고 하다가 벌어진 일이다. 아이는 본인의 종이가 찢어져 속상해서 울음이 시작되었겠지만, 한 켠에 엄마의 말을 듣지 않아 생긴 일이니 미안함도 가졌을 것 같다. 다음번에 비슷한 상황이 된다면 엄마 말씀처럼 손으로 들고 다니지 않고 가방에 넣거나 맡기게 되지 않을까?

 

계속 울고 있는 아이에게 어제 칭찬을 받았던 이야기를 들었다며 화제를 돌렸다. 아이도 본인이 칭찬을 받았던 장면을 떠올렸는지 금세 울음이 멈춘다. 그리고 그때 불렀던 노래를 들려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정말 아이들에게 칭찬을 중요한 것 같다. 자신감을 불러일으켜 주는 최고의 촉매제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걸 어려워하고, 친구들에게 말을 붙이는 것도 어려워한 녀석인데, 뮤지컬과 태권도를 하고 난 후로 사람들 앞에서 빼지 않고 자신감을 갖고 이야기와 노래를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대견하다. 뮤지컬을 보러 다니면서 관심을 보였고, 뮤지컬을 직접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아이의 의사를 물으니 하고 싶어 하여 보내봤는데, 잘 한 선택인 듯하다. 몇 개월 전과 사뭇 달라진 아이의 모습을 보고 아이 친구들도 이번에 함께 수업을 듣기로 했다. 지난주 새로 시작한 반에는 기존에 함께했던 2명의 친구와 이번에 합류를 하게 된 2명의 친구까지 총 4명의 아는 친구들과 함께 해서 그런지 첫 수업부터 수다스럽고 시끌벅적하여 선생님께서 아주 재미있고, 힘든(?) 여정이 될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떠셨다. 오늘 2주 차 수업에서는 다들 연습도 잘해오고 이미 친해져서 합이 잘 맞는다며 기대가 된다는 말씀도 전해주셨다. 다음 공연 때는 더 재미있게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아이는 뮤지컬 수업을 마치고 나서도 친구들과 더 놀고 싶은가 보다.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나를 닮아서 그런지 노는 데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은 녀석인 것 같다. 얼른 점심을 먹고 예매를 해둔 모아나2를 보러 가야 했기 때문에 팝콘 이야기를 꺼내며 또 빠르게 환기를 시켜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부리나케 식사를 준비했다. 점심부터 오겹살에 된장찌개다. 후딱 멸치 국물을 내고, 채소들을 썰어 투하하고, 된장과 고추장, 그리고 청양고추에 대파까지 넣었는데 맛이 안 난다. 냉동실을 열지 않았더니, 얼려둔 다진 마늘을 빼먹은 것이다. 마늘을 넣고 나니 그제야 맛이 난다. 신기하다. 그리 많이 들어가는 양도 아닌데, 그것 하나 빠졌다고 맛이 안 나다니. 음식은 조화다. 각기 다른 재료들에서 나오는 맛이 한데 어우러져 맛있는 음식이 된다. 일을 할 때 팀도 그렇다. 두각을 나타내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팀원이 있는 반면, 아직은 서툴더라도 자기 일을 묵묵히 하며 빈 곳을 채워주는 팀원이 있다. 제아무리 전자의 직원이 잘한다고 하더라도, 후자의 직원들이 다른 일들에 신경 안 써도 되게끔 잘해주지 못한다면 전체 프로젝트 또는 일은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으며, 결과도 시원치 않을 것이다. 빠르게 준비하고 먹고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준비하면서도 이런 생각이 들다니. 아직은 좀 여유가 있나 보다. 고기와 양파를 굽고 한 상 가볍게 챙겨 먹는다. 와이프와 아이 모두 맛있다며 먹는 모습에 고맙다. 된장찌개도 평소보다 적은 건더기를 넣고 끓였는데, 오히려 깔끔하니 맛이 좋다.

 

그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점심을 해치우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차가 한가득이고, 주차할 공간이 없다. 한 바퀴를 도는데 지날 때 헤드라이트가 켜져 있었던 차량이 출구 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재빨리 그 자리를 향해 가보았다. 다행히 아직 주차한 차량이 없다. 더군다나 영화관으로 올라가는 출입구 바로 앞이다. 이것은 러키 비키!

 

모아나 1편은 와이프와 연애를 할 때 봤었는데, 음악, 영상, 그리고 이야기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작품이기에 너무 재미있게 봤다. 특히, 디즈니에서 나온 대부분의 영화들이 서양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 외 지역을 다룬 영화들이 흥행 면에서 다소 뒤처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기에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온 듯하다. 모아나의 음악들은 지금까지도 흥얼거릴 정도로 좋은 노래가 많고, 특히 이번 아이의 뮤지컬에서도 1곡이 들어가 있어 함께 따라 부르고 연습했기에 조금 더 특별했다.

 

사실 모아나 2편의 음악은 1편에 비해 폴리네시아 국가들의 음악 느낌보다는 팝적인 요소들이 가미된 듯하여 아쉬움이 들었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장면과 함께 음악을 들어보니 괜찮다. 1편의 'How far I'll go' 만큼은 아니지만, 영상과 매우 잘 어울리고, 귓가에 맴돈다. 특히 클라이막스 부분은 리그오브레전드의 제목이 생각은 안 나지만, 어떤 곡과 비슷한 느낌이 들며 감정을 확 끌어올린다.

 

1편과 2편의 음악에 대해 잘 모르지만, 느낌 위주로 이야기를 좀 더 해보겠다. 지금까지 나온 디즈니 영화 중 모아나 1편을 단연코 1등으로 꼽는 이유는 바로 음악이다. 폴리네시아 국가들의 전통적인 음악색이 영화 내내 그대로 흘러나온다. 특유의 역동성을 바탕으로 에너지 넘치고, 부족 전체를 아우르는 힘이 느껴진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폴리네시안이 된 것과 같은 환상에 젖기도 하고, 그 자체로 부족의 일부같이 느껴지며 이질감이 전혀 없다. 하지만, 2편의 음악이 팝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은 조금 더 오케스트라를 이용한 화려함을 가미한 것이 폴리네시아 국가들의 퍼커션에 기반을 둔 타악적 요소보다는 서양의 관현악적인 요소가 부각되는 것 같기에 약간의 거리감이 느껴진달까? 선입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 중간 즈음 모아나가 다른 부족을 찾아 떠나는 장면에서 나온 노래 'Finding The Way'를 들을 때 가장 편했다.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문화가 그대로 담긴 그 곡에서 이질감 없이 부족의 일원으로서 모아나가 새로운 여정을 떠날 때 안녕을 바라게 되는 자연스러운 몰입감을 주었다.

 

1편을 능가하는 2편은 사실 어렵다. 1편에서 느꼈던 것을 뛰어넘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으니. 하지만, 3편이 기다려진다. 겨울 왕국보다는 모아나는 서사가 있고, 특히 이번 2편은 3편으로 가기 위한 전개에 집중한 듯한 느낌이다. 오히려 그래서 3편이 기대가 된다고 할까?

 

아, 그리고 2017년, 2022년 이렇게 하와이를 다녀왔는데, 2027년에 하와이 또는 다른 폴리네시안 국가들을 가보는 것을 위시리스트에 넣었다. 아이에게도 2022년에 하와이 다녀온 것 기억나느냐 물었을 때?

 

"어디?"

 

"왜 너 거북이 그려진 원피스 입고 바다에서 춤추고 놀았던 데 있잖아. 비행기 오래 타고 가서 앵무새도 보고, 공룡 뼈다귀 같은 것도 보고, 엄마랑 도로에서 사진 찍고, 원주민들 문화 체험하러 가서 오늘 들은 노래 비슷한 노래 나오는 곳에서 밥도 먹고"

 

"아! 기억나! 나 또 가고 싶어"

 

"아빠도 진짜 또 가고 싶어~~~ 엄마도 분명 그럴꺼야."

 

와이프는 영화 끝나고 크레딧 올라가는데, 자리를 지키며 끝까지 앉아서 보고 있었다. 어제 자막으로 혼자 보고 와서 우리랑 같이 더빙으로 한 번 더 본 것인데도 저렇게 몰입해 있는 모습을 보면 와이프도 참 좋아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하루의 일상을 정리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영화에 대한 리뷰를 하고 있네. 영화 러닝타임 보다 장면을 다시 떠올려 보고 생각을 정리하며 쓰는 데만 더 긴 시간을 사용하고 있다. 주중에 모아나 2 리뷰나 별도로 하나 해볼까 싶다.

 

아무튼 간에, 하루 일상 주저리주저리 떠들다가 모아나 2 이야기에 오랜 시간 할애를 한 이유은 영화도 영화지만, 모아나가 새로운 것을 향해 도전을 이어 나가고, 항상 자신감 넘치는 그런 모습에 힘을 받아서 아닐까? 그리고, 그만큼 나의 모아나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는 방증 아닐까? 하나 더 더해보자면, 하와이, 호주, 뉴질랜드, 피지 등 폴리네시아 국가로 여행을 또 가고 싶기도 하고!

 

조만간 아이랑 모아나 1편을 한 번 더 봐야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득하니 한 번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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