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 주저리

2024년 12월 8일 - 21일차

시나브로상승 2024. 12. 9.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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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데리고 지난주 뮤지컬 공연 후 새롭게 바뀐 반으로 뮤지컬 수업을 들으러 갔다. 어린이집 친구 2명, 지난 뮤지컬 같은 반 친구 2명(오늘 오지 않은 친구까지 하면 3명)이 있었다. 특히 어린이집 친구 1명은 아이를 보자마자 이름을 부르며 달려 나왔고, 아이는 그 친구를 보며 발을 동동 구른 채 반갑게 손바닥을 치며 반겼다. 이후 지난번 공연을 같이 했던 친구 2명까지 합세하여 격한 환영을 받은 채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잠시 동안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기분이 좋은 상황을 깔깔대며 좋아했다. 선생님은 이번 기수 수업이 재미있는 수업이 될 것 같다며 말씀은 하시지만 무척 고된 수업이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신 듯하다. 선생님 목이 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친구를 2명이나 데려왔기 때문에 무료로 2달간 댄스 수업을 하게 되어 3시간이나 연달아 뮤지컬 + 댄스 수업까지 하다 보니, 아이가 약간 힘이 든 듯하다. 2시간 또는 1시간 수업을 하고 나올 때는 에너지가 넘치는 듯하였으나, 오늘은 지친 기색을 보이며 나왔다. 댄스반 선생님께서 아이가 지난번 수업에서 촬영을 하지 못한 채 마무리했던 아쉬움을 피력하셨다. 기대가 많았고, 촬영을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다며. 오늘은 오랜만의 수업이기도 하고 피곤해 보여 많이 푸시하지 않은 채 쉬고 싶을 때 쉬게 두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번 수업에서도 기대된다며 말씀은 하시는데, 정확하게 어떤 점 때문인지는 말씀이 아직은 없으시다. 다만, 아이는 확실히 댄스를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선생님이 해주시는 동작을 잘 따라 하고 잘 기억하는 편이다. 다만 내가 알기로 그렇게 잘 추는 춤은 아닌데, 선생님께서 무언가를 보신 게 있으니 계속 뵐 때마다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 하시는 듯한 분위기다. 그게 나중에 좋은 점이기를 바라본다.

 

뮤지컬 선생님도 아이의 좋은 점을 말씀 주셨다. 익숙한 친구들과 함께해서 그런지 매우 경쾌하고 쭈뼛대지 않고 수업에 집중을 하며 좋은 자세를 보였다고 말씀 주셨다. 12월은 몸풀기 기간으로서 캐럴을 정하고 발성 및 발화 연습을 한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느끼며 즐겁게 하길 바란다.

 

뮤지컬을 다니면서 사회성이라든지, 발화라든지 짧은 기간이지만 많은 도움이 되는 듯하다. 특히, 아이의 선생님은 요즘 선생님 답지 않게 혼도 내는 편인듯하다. 그만큼 욕심도 있으신듯하고, 약간은 인내가 부족한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아이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혼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아이는 뮤지컬을 가고 싶어 하지 않거나 선생님을 무서워하거나 싫어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아 스스로도 잘못한 점에 대해서는 인지하는 듯하다. 그다음 시간에 같은 지적을 받는 경우는 없으니...

 

뮤지컬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와 할아버지께 생신 축하 손편지를 쓰도록 시켜봤다. 무엇을 쓰고 싶은지 물어보니, '생일 축하해요. 할아버지. 사랑해요'라고 쓰고 싶단다. 생각보다 짧은 문장에 조금 더 끌어내보려고 물어봤지만, 이 정도로만 하자고 한다. 할아버지 생신 축하 손편지보다 사촌 언니들과 오빠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기에 빨리 할아버지를 뵈러 가는 편을 기다리는 듯하다.

 

아이가 혼자 써보겠다고 해서 쓰는 걸 봤더니,

'셍이추카해요. 하러버지, 사랑해요'라고 썼다.

 

학교에서 하는 영어 단어 퀴즈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읽을 줄은 아는데, 듣고 그 소리를 쓰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인 듯하다. 발음은 그대로 들리는 대로 연음화된 부분이 있다 보니, 그대로 쓰게 되면 당연히 맞춤법에 틀리는 부분이 나올 수밖에 없고, 'ㅐ'와 'ㅔ' 소리를 구분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어떤 부분은 당연히 반복적 사용을 통해 외울 수밖에 없는 영역인 것 같다. 아이에게 일기 노트를 만들어 주고 본인이 쓰고 싶은 이야기를 한 줄이라도 쓰도록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싫은 좋든 매일을 정리하고 블로그에 글을 남기다 보니, 하루가 조금 더 의미 있고, 정리하면서 그냥 지나 보낼 감정, 기억 등을 복기하면서 떠올릴 수 있어 의미가 남달라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여러 가지를 하루에 한 줄이라도 일기를 써본다면 또 다른 발전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고모와 고모부도 이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굉장히 무서운 속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음에 놀랐다고 한다.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 뮤지컬 선생님, 그리고 친지들 모두 9월에 비해 3개월 만에 이렇게 많이 달라졌음에 많이 놀라신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하나를 잘하게 되면 또 하나가 걱정이 되고, 그렇게 되풀이되고 있다. 아직 또래보다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고, 아이도 지금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슬럼프 단계에 있는 듯하여 조금은 조심스럽다. 자칫 스스로 하고자 하는 욕구 자체를 사라지게 한다면 안 될 것 같으니 줄타기하는 심정으로 자세히 관찰하며 함께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조카들을 보면 참으로 잘 컸다는 생각이 든다. 조카 3명 모두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다.

 

첫째 조카는 논리적이고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스토리텔링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시각화를 굉장히 잘 한다. 학교에서 전체 회의를 진행하는 간사 역할을 잘하고 있고, 친구들의 캐리커처를 그려 학급 문고의 표지도 만들고, 여행 계획도 잘 세우는 등 무언가를 잘 계획하고 진행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아직 중학생도 아닌데 영어로 에세이 쓴 것을 보면 정말 내용이 논리 정연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예시도 잘 들고, 술술 읽히는 글을 잘 쓴다. 문장이 술술 읽힌다는 것은 내용의 전개가 물줄기 마냥 잘 흘러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서없는 글이 아니가 본인이 하고자 하는 말을 참 잘 정리해 나가는 듯하다.

 

둘째 조카는 마음이 매우 넓고, 순발력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할아버지의 역할 때문인지 아니면 혼자만 영어를 안 배웠던 것에 대한 자극으로 열심히 인지 모르겠지만, 영어 공부에 매진하면서 짧은 시간에 빠른 성과를 내고 있다. 영어 한 마디도 못하던 애인데 3개월도 채 안 되어 영어 문장도 제법 쓰고, 특히 발음이 좋다. 신기하다. 무엇보다 둘째 조카의 강점은 관찰력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인기도 많고, 친구들을 비롯하여 주위를 챙기다가 본인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고 지칠 때도 간혹 있는 듯하다.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그러한 모습은 점차 줄어들지만, 참으로 대견한 부분이 있다. 할아버지 생신 선물로 '대파 씨앗'을 준비했다니. 시골에서 소일거리로 텃밭을 가꾸시는 것을 보고 '대파 씨앗'을 선물로 준비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만큼 세심하고 상대의 입장에서 판단한다는 방증이다.

 

셋째 조카는 공간 감각이 뛰어난 것 같다. 아기 때부터 그림을 그릴 때 입체감이 넘치고 역동적인 그림을 잘 그렸다. 점점 커가면서 그림에서 블록으로 관심사가 바뀌어 최근에 잘 그리진 않지만, 혼자만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내는 레고 블록의 결과물에 상당히 놀랬다. 그리고 오늘은 아이와 함께 종이접기를 했는데, 본인의 상상력으로 종이접기를 하는데 신기한 모양을 잘 만들어 낸다. 아이랑 1살 밖에 차이 나지 않는데, 참으로 긴박하다. 창의력 하나는 타고난 듯하다.

 

우리 아이는 눈치는 100단인 것 같다. 돌아가며 칭찬을 하는 시간이 되니 본인은 발레를 해보겠다며 앞에 선다. 아가 때 발레 처음 했을 때 비슷한 상황에서 칭찬을 했던 것이 뇌리에 박혀있었나 보다. 백조의 호수 노래를 틀어달라 하고 발레를 보여준다. 발레라기보다는 행위예술, 전위예술에 가깝다. 우스갯소리는 아니고 음악을 듣고 표현을 잘 한다. 어디에서 보고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기 때부터 음악이 나오면 음악에 맞춰 동작을 잘 만들어 내고 느끼는 대로 잘 흐느적대긴 했다.

 

오늘은 아버지 생신을 앞당겨 식사를 하고자 모이긴 했지만, 아버지 생신 축하보다는 아이들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일찍 결혼을 해서 3아이의 부모로서 고생이 많았을 텐데, 이제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니 신경 쓰는 부분이 많이 줄어들게 되었고, 이제 셋이서 알아서 잘 부닥뜨려 가며 잘 크고 있다면서 이제 좀 여유가 생겼다고 한다. 그 점이 부럽기도 하다. 우리 아이는 혼자 크다 보니 심심할 때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사촌 언니 오빠들을 그렇게 오매불망 기다리나 보다. 정말 봇물 터지듯이 수다쟁이가 되고, 이제는 제법 말장난도 쳐가며 잘 논다. 아이는 아이의 시선과 언어가 있는 듯하다. 집에서 그렇게 충분히 해주지 못하는 점이 아쉽기는 하나 그래도 나름 많은 방법들을 책을 통해 배우고 있고, 그렇게 해주니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이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저녁 식사 전 지역 내 아트센터에서 음악회가 있었다. 갈까 말까 고민이 많았었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만족스러운 공연이었고, 정말 재미있게 즐기고 왔다. 요 며칠 기분이 좋지 않은 상황이 되어 다운되어 있었는데, 공연을 보면서 즐기기도 했고, 많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지휘자, 마에스트로는 딱딱한 이미지다. 노다메 칸타빌레의 프란츠 폰 슈트레제만처럼 매우 엉뚱한 모습은 아니지만, 오늘 지휘자 이종관 님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클래식이라 하면 고루할 수 있고 경직된 이미지를 가질 수 있을 듯한데, 곡의 설명이나 2시간 공연으로 압축해서 짜기 위해 교향곡의 핵심만을 발췌하고, 해당 작품에 대한 간결하면서 귀에 쏙쏙 박히는 설명이 재미있었다. 또한, 중간중간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고, 왈츠곡에서는 재미있는 율동도 하시고, 멕시코 노래를 할 때는 멕시코 전통 모자를 쓰고 지휘를 하는 등 매우 재미있는 공연을 즐기고 왔다. 2시간 공연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다음에도 또 비슷한 공연이 있으면 가고 싶다 느낄 정도였다. 사실 연주 실력이 정상급도 아니고 실수도 있었다. 병역명문가로서 5천 원이라는 매우 저렴한 가격에 공연을 보게 되었는데, 공연을 다 보고 난 후 오히려 돈을 더 내고 봤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공연이었다.

 

또한, 지휘자께서 모시고 온 첼리스트 노진호 님은 올해 73세인데, 어쩜 아직도 그렇게 관리를 잘 하셨는지 전혀 할머니라고 느껴지지 않는 자태로 연주를 하셨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200년도 넘은 스트라 마리우스 첼로라고 했던 것 같은데(그 첼로라고 했던지 그것에 견주는 것이라고 하셨는지 명확하진 않음, 아무튼 엄청 비싼 악기라고 지휘자님께서 소개하셨다), 선입견 때문일까? 교향악단이 연주를 할 때 들리는 여러 대의 첼로 소리보다도 1대에서 나오는 첼로 소리가 훨씬 크고 웅장했고, 특히 활을 켤 때 첼로가 우는 듯했다. 비틀스의 예스터데이를 연주하셨는데, 단 두 소절 만에 그 음의 떨림이 마음을 흔들었고,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만 그러는 게 아니라 옆에 앉아 계셨던 분과 뒤에 앉아 계셨던 분은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눈물 한 방울만 똑떨어진 나는 그래도 눈물이 내 광대와 콧잔등 사이를 흘러 내려가게 내버려 뒀다. 눈물을 훔치는 것이 창피해 서가 아니라 그냥 그 순간 눈물이 흘러내려가며 나의 어제가 그렇게 함께 자연스레 지나가길 바라고 있었다.

 

어쩌면 오늘의 공연이 더 재미있고 즐거웠던 이유가 바로 위의 이유였을 수도 있다. 눈물 한 방울과 함께 떨궈보내고, 이어지는 경쾌한 음악에 몸을 맡긴 채 즐거움으로 승화시킨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결론은 기분이 좀 나아졌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생신을 앞당겨 다 같이 밥을 먹는 자리에서 매제가 큰 조카와 이야기하는 것 중에 인상 깊은 한 마디가 있었다. 아, 나랑 매제는 1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나보다 성숙하고 와이프와 마찬가지로 본인의 가치관이 매우 확실하며, 자신감도 있고, 인생을 즐기며 살고 있는 친구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많이 배우게 된다. 다시 인상 깊은 한 마디로 돌아와서, 매제가 큰 조카에게 '목숨을 걸고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라는 말을 했다.

 

여기에서 두 가지 생각이 훅 하고 지나갔다. 첫째로, 이번 계엄령 선포는 목숨을 걸고 했던 일이고, 이후 탄핵 소추안에 대한 의결 자리에 목숨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로 인해 이기지 못한 수순으로 결론이 나버린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둘째로, 나의 우유부단함과 쓸데없는 걱정으로 인해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지 못하는 성격이 내가 잘 되지 못하는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서는 가장 피해야 할 것이 나 자신과의 타협이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새겨 놓고 행할 때가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이켜 보면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할 때 타협이 많은 편인 듯하고, 나 자신에게 관대한 부분이 상당수 존재했다. 그리고 후회를 잘하는 편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에 반해 아버지는 반대인 것 같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와이프와 매제 모두 보면 오늘을 최대한 즐기며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인 것 같다. 후회하기보다는 말이다. 아버지께서 오늘 식사 자리에서 본인의 인생을 돌이켜 보면 본인은 '세상에서 제일 잘 노는 사람'이라고 평가하셨다. 재미있게 놀기 위해 계획도 잘 세우고, 계획을 세웠으면 실행에 옮기고, 실행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이벤트들도 즐겁게 즉흥적으로 대응해 가며 수정하고 즐겁게 삶을 잘아가고 계신다고 하셨다. 나도 그렇게 생각을 하기에 오늘 아버지께 생신 축하 손편지에도 비슷한 내용을 적었다. 아버지는 항상 나의 롤 모델이자 존경의 대상이었고, 나는 그런 아버지를 흉내 내기를 해보았지만, 역시나 따라쟁이는 오리지널을 따라가기 어렵다고 느낀다. 즐겁고 삶을 즐기는 한량이 되길 바랐지만, 황량한 백수가 되어버린 상황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직 나는 아버지의 연배가 되기까지 시간이 남아있고, 흉내를 좀 더 내며 내 것을 찾아간다면 나도 아버지처럼 그렇게 즐겁게 행복한 삶을 살았노라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썼다. 그렇게 꼭 하고 싶다고. 그래서 나에게 좋은 본보기를 더 보여주실 수 있게 건강 잘 챙기고, 가족들 걱정 안 되는 범위 안에서 즐겨달라고 당부드렸다. 내가 이렇게 말을 한다고 본인의 인생을 즐기는 것에 '내가 다 알아서 해'라고 말씀하실게 뻔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내가 의지하고 동경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리 말씀을 드렸다.

 

아이도 재워야 하고 내일 오전까지 이력서를 달라고 하신 분이 계셔 그것도 마저 정리해서 보내야 하기에 밤 10시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피곤한지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고,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책상에 앉았다.

 

이력서에 경력 사항에 대해서 자세히 적었고, 자기소개, 업무상 강점, 그리고 입사 후 포부를 적으며, 최대한 나를 드러내보고자 노력했다. 쓸데없이 겸손하게 쓰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했던 부분에 대해 자신이 있었고, 잘 판단을 해 좋은 결과를 냈었고, 그때 재미있었음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리고, 포부에 대해서도 평소 생각을 하고 있었던 글로벌 시장에서의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써봤다.

 

하고 싶은 것, 잘할 수 있는 것, 그래서 그걸 하면서 행복한 것을 하고 싶기에 대 놓고 드러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겸손을 따지고, 좋은 게 좋은 거다 할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너무나도 일을 하고 싶기 때문에... 목숨을 걸 만큼 처절한가? 절실한가? 오후까지 써 놓은 것을 몇 번 다시 읽으며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오히려 이게 반감을 살 수도 있고, 건방져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내 나이 즈음 되면 한 방이 있어야지, 젊은 친구들이 나를 대체해서 할 수 있는 부분을 강조해 봐야 젊음에 경쟁력도 없다. 모 아니면 도다. 정말 그 자리에서 일하고 싶다. 한다면 끝까지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치열하게 살 거다.

 

매일매일 하루를 돌이켜 보고 적다 보면 2시간을 넘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루를 복기하는데, 그리고 하나하나 기억을 떠올리고, 그때 생각했던 내용과 감정을 떠올리고 다시 느낀 것을 적는 것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10일차 정도 되었을 때는 부담이 되었다. 비슷한 내용인 것 같고, 어떻게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런데 지금은 그냥 정말 주저리주저리이다. 그게 나답게 쓰는 글이다. 나도 아직 어휘가 짧아 표현이 많이 서툴지만, 계속 쓰다 보면 차차 바뀔 것이다.

 

20일이 지나고 나서도 20일 전과 똑같다는 와이프의 핀잔이 매섭다. 정말이지 무서운 사람이다. 관성이라는 물리의 법칙을 아는가? 한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려는 성질 말이다. 그 관성을 한 방에 끊고, 반작용을 일으켜 방향을 바꾸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본인이 그렇게 솔선수범을 보이고 올곧으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 그나저나 해야 할 일이 왜 이렇게 많냐?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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