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이의 생일. 아이는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뭉그적거리며 일어날 생각이 없던 아이에게,
"Happy birthday" 하고 말하니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듯 일어났다. 역시나 의지가 있으면 안 되는 일은 없다.
와이프는 일찍 회사로 나가고, 아이는 밥을 먹는데 한 세월이고, 나는 아침을 잘 안 먹는 편이다 보니 아침에 셋이 아침밥을 먹을 기회가 많지 않다. 그런데, 오늘은 아이의 생일이기에 미역국을 끓여 셋 모두가 함께 밥을 먹었다. 한자리에 앉아 함께 밥을 먹으면 대화가 자연스레 오간다. 대화가 오가게 되면 본인 또는 상대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대화를 통해 서로를 더 알아가게 된다. 특히,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현재의 상황이 어떤지를 알게 되면 또 다른 관심을 이끌어 내게 되고, 대화를 통해 꼬리에 꼬리를 물어가며 빠르게 늘어나는 사고의 확장을 경험하게 된다. 아침에 함께 밥을 먹게 되면 아이에게 하루에 어떻게 지내기를 바라는 지도 함께 이야기해 줄 수 있어 아이에게도 좋은 것 같다. 내가 아침잠이 많다 보니 그동안 많이 못 해주었는데,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한다면 셋이 함께 밥을 기회가 자주 생길 것 같다.
어제 새벽 천둥 번개를 동반한 눈구름이 몰려왔다. 새벽녘에 못 쓴 블로그에 글을 쓸 때 바깥은 계속 번쩍거리며 천둥소리가 요란했다. 그렇게 이른 시간까지 많은 눈이 내렸고, 주위가 온통 하얀 겨울 왕궁이 되어있었다. 셔틀버스 시간에 약간 늦은 것 같아 빨리 가야 한다는 나의 재촉에도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화단에 주저앉아 눈을 뭉치고 던지기를 반복한다. 처음 보는 진눈깨비를 보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오늘 생일이기에 들떠 있는 것도 있었겠지만, 올해의 첫눈이 본인의 생일에 내렸으니 오죽 좋았겠는가? 학교에서 생일 파티를 자그맣게 해주는데, 머릿속에 그 생각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약 1달 전 아이의 생일 케이크를 준비해 두었는데, 오늘 이렇게 만들어져 배송되었다고 했다. 정말 솜씨가 대단하다. 너무나 만족스러운 세상에 하나뿐인 생일 케이크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아버지께서는 시골에서 손녀의 생일 저녁을 함께 하고자 올라오셨는데, 평소 2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를 5시간 반이 걸려 오셨다. 지난번엔 도로 공사를 해서 오래 걸리더니, 이 번에는 눈 폭탄으로 인해 더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된 것이다. 해가 지날수록 운전의 숙달 정도가 떨어지는 것 같게 느껴지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 운전을 하시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오늘은 아이 태권도 승급 심사 날이다. 승급 심사라고 해봐야 매달 띠를 바꿔주는 하나의 행사이다. 관장님께서 아이들이 매달 띠를 바꿔 맴으로써 성취감을 맛보게 해주는 것이 취지라 하셨는데, 그 효과는 참으로 크다. 띠를 바꿔오게 되면 제일 먼저 하는 인사는 본인의 새로운 띠를 보라는 것이다. 그 요청에 대한 답은 보통 '이야, 정말 고생했네. 대단해', '벌써 oo 띠야? 멋있는걸?' 등 긍정적일 테고, 긍정적인 칭찬이나 코멘트를 아이를 춤추게 한다.
새로운 띠를 착용하고 저녁식사를 위해 아버지에게 바로 갔다. 아버지는 손녀를 오랜만에 보는 터라 인기척에 방에서 나오셨고, 아이도 할아버지가 오셨다는 말에 할아버지 방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문 앞에서 서로 부딪칠 뻔했고, 아이는 깜짝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니는 아이를 안고 소파로 몸을 옮겨 앉으셨고, 아이의 관심을 새롭게 받은 띠로 옮겼다.
"이야, 새로운 띠를 받았네? 이건 어떻게 해서 받은 거야? 한 번 보여줄 수 있을까?"
아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이 금세 눈물을 멈추고는 자리에 서 오늘 심사 품세를 보여준다. 절도 있는 동작과 기합을 기대했지만, 아직은 어설프다. 하지만, 동작 하나하나를 할 때 진지하며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요즘 가장 재미있는 것이 태권도라고 하더니, 얼굴만 봐도 얼마나 즐거운지 보인다.
아버지께서 아이의 생일 기념으로 저녁을 사주셨다. 아이가 잘 먹기도 하고, 아버지도 술 한잔하기 좋은 양고기 집으로 향했다. 오늘 눈이 엄청 오는 터라 칭기즈칸이 매우 잘 어울리는 상황이다. 식사를 하는 도중 밖을 보니 눈이 더 많이 내리고 있었다. 아이는 양껏 먹고 난 후 밖에 나가서 놀고 싶다고 한다. 이렇게 눈발이 강하게 날리는 것을 이제껏 경험하지 못하였으니, 신기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했을 것이다. 맨손으로 눈을 뭉쳐 던지기도 하고, 눈사람을 만들어 보고 싶다며 눈 뭉치를 점점 키워보기도 한다. 하지만 손도 시리고, 생각보다 둥글게 만드는 것이 어려워 보였다. 옆 가게에 눈사람을 만들어 둔 것과 함께 사진을 찍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다시 들어왔다. 하지만, 아이는 성에 차지 않았나 보다. 나와 와이프는 바통 터치를 하고 아이는 밖에 나가 놀이를 계속한다. 뽀득뽀득 쌓인 눈을 밟아보기도 하고, 나무에 쌓인 눈이 무게를 견디지 못해 떨어지는 것을 맞아보기도 한다. 코가 새 빨개지고 얼굴이 하얗게 되는 등 추운 날씨인데도 미소 가득한 얼굴로 뭐가 그리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노는데 1등이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고 아버지는 본인의 역마살에 대한 기억을 말씀해 주셨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는 화목에 사용할 소나무를 쟁여두셨는데, 소나무의 껍질은 마르게 되면서 매끄러운 부분을 남긴 채 떨어져 나오게 된다. 그런데, 그 껍질의 두께가 어른 팔목 정도로 두껍고,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는 그 껍질을 조각하여 돛단배를 만들어 물에 띄워 흘려보냈다 하셨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것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본인의 역마살이 아닐까 하셨다.
아버지는 와이프와 비슷한 부분이 있는데, 계획적이며,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반드시 해내는 사람이다. 작년에는 자유여행으로 뉴질랜드 트래킹을 약 1달간 다녀오셨고, 내년 3월에는 약 20일간 호주 여행을 떠나신다. 그리고 그 사이 베트남에 자전거 여행도 신청을 하셨다. 은퇴 후 여행과 자전거라는 취미를 가지고 그 누구보다 재미있는 삶을 즐기고 계신다. 아버지 혼자 그렇게 여행을 다니실 때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지만, 워낙 본인 스스로 관리를 잘 하시고, 계획을 잘 세우고 다니며, 임기응변에도 능하시기에 걱정의 깊이가 아주 깊은 것은 아니다.
나도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서 일까? 여행을 무척 좋아한다. 하지만, 아버지처럼 혼자서 자유여행을 하고 어려운 길을 택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나는 호텔과 리조트, 그리고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니는데 더 많은 시간 할애를 할 것이다. 지금 당장은 당분간 여행 계획을 세우고 떠나는 것이 어렵지만, 다음 여행 전까지 여행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보고자 한다.
아버지와 오랜만에 소주 한 잔을 해서일까? 오늘 하루의 일상을 정리하는 것이 조금 고되다. 하지만 해야 한다. 100일간의 습관이 중요하기 때문에...
오늘 하루도 다양한 이벤트의 연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낀 그런 하루다. 가족이 있기에 하루가 즐겁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