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 주저리

2024년 11월 24일 - 7일차

시나브로상승 2024. 11. 24. 23:48
728x90
반응형

 

어제 잠을 설쳐 늦게 잠이 들어 잠을 많이 자지 못한 채 어머니와 이모님을 공항에 모셔다드리고자 일찍 일어났다. 와이프는 새벽부터 일어나 음식을 준비하고 분주하게 나와 아이를 깨운다. 정말 어쩜 저리 한결같이 일어날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얼마 전 김경일 박사 강연 쇼츠에서 본 것처럼 아침형 인간, 저녁형 인간이 있는데, 와이프는 철저하게 아침에 본인의 리듬이 정점에 닿는 아침형 인간인가 보다.

 

우리 가족 셋 모두가 함께 공항에 마중을 나가게 되니 어머니와 이모님이 매우 놀라신 듯하다. 아침 일찍부터 준비해서 나와 이른 시각에 공항에 마중을 나가다니 말이다. 그리고, 아이는 무슨 바람인지 아침부터 책을 들고나가 할머니와 이모할머니에게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칭찬을 받고 싶은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칭찬을 받으니 뿌듯한 듯하다. 덕분에 어머니와 이모님은 편하게 오고 손녀딸의 환대를 받아 기분 좋게 여행을 떠나셨다.

 

공항에 모셔다드리는 일이 별것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이르고, 가족 전부가 함께 차로 모셔다 드리니, 가는 내내 활기찼고, 웃음이 가득했다. 어머니도 이모님께 면이 살았을 것이다.

 

어제 계획한 대로 오늘은 아이에게 도서관에 함께 가자고 말을 했다. 아이가 흔쾌히 가고 싶다고 할 줄은 몰랐고, 계속해서 언제 가냐고 물으며 보챌 줄은 더더욱 몰랐다.

 

아이가 도서관을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도서관 근처에 오니 아기 때 와 봤다고 한다. 몇 년 전에 책을 읽어주려고 데려와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많이 울고 집에 가고 싶다 보채서 금세 돌아왔던 기억이 있는데, 아이도 한 번 와 본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아이 독서 챌린지를 위해 영어 도서가 있는 곳을 찾아 2층으로 올라갔는데, 조용한 분위기에 아이는 살짝 얼었다. 학교 도서관 보다 훨씬 큰 규모의 도서관에 책이 너무 많기도 하고, 학교 도서관과는 사뭇 다른 규칙을 가진 책의 나열에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책을 골라야 할지 몰라 내 등 뒤에 서서 손으로 밀며,

"아빠가 책 좀 찾아봐"라고 말한다.

 

나도 처음인지라 잘 모르지만, 랙의 모서리에 카테고리를 보니 'babies - seven years'라고 쓰인 랙이 몇 개 보여 학교에서 빌려오는 책과 비슷한 것을 찾아보려고 했다. 'ready to read' 시리즈, 다양한 pre-kinder 레벨의 책들이 있었지만, 학교에서 빌려오는 책과 비슷한 류의 책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비슷한 글밥을 가진 책을 가지고 와 AR Quiz가 가능한 도서인지 체크해 봐도 잘 검색이 안되어 시간이 좀 걸렸다. 랙을 뒤지다 보니 아이가 얼마 전에 빌려왔던 책이 보였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것들 중 제일 낮은 lv 1을 들고 와 함께 읽어보니 이건 초등학교 1학년 또는 2학년이 읽는 레벨인 듯하다. 아이가 읽기엔 다소 어려워 보였지만, 아이는 끝까지 같이 읽겠다며 다 읽어 내려갔다. 단어도 처음 보는 것들이고, 단어의 길이도 길고, 무엇보다 퀴즈의 내용이 책의 내용을 비슷한 다른 단어로 재구성하여 나오는 터라 여태껏 책의 문장 그대로를 기억하고 답을 찾는 퀴즈와는 많이 달랐다. 아이는 많이 당황하고 어렵다며 기가 죽은 듯했다. 하나하나 천천히 설명을 해주고 답을 찾아가니 꾸역꾸역 겨우 한 권을 읽었다.

 

다시 다른 섹션을 뒤지다 보니 아이가 자주 가져오는 강아지 Biscuit이 주인공인 책이 모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앞서 가져왔던 책은 Lv 1이었지만, Lv 0이라고 쓰여 있기에 해당 바구니에 있는 모든 책을 다 가지고 와 검색을 해보니 0.8~1.4로 아이가 읽기에 충분한 레벨이다. 본인이 여러 번 읽어봤던 책이어서 그런지 본인이 읽어보겠다고 들고 가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자신감이 조금 붙으니 금세 한 권을 읽고, 퀴즈를 자신 있게 풀어낸다. 퀴즈 전 '음성을 듣고 읽은 것인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읽은 것인지? 혼자 읽은 것인지?' 체크를 하는 절차가 있는데, 본인 혼자 읽었다는 것을 강조하며 마우스를 빼앗아 들고는 해당 답변에 체크를 한다.

 

확실히 책을 읽고 퀴즈를 풀 때 보면, 함께 읽은 것보다 혼자 집중을 하고 읽었을 때 책을 다시 참고하지 않아도 내용을 잘 기억하고 퀴즈 문제를 술술 풀어낸다. 아마 지난주 선생님께서 아이를 칭찬했던 이유도 그 순간만큼은 아이가 해당 수업에 집중을 잘하고 기억을 잘하고 있는 가운데 이어진 퀴즈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상상이 되었다.

 

그렇게 한 다섯 권 즈음 읽고 나니 아이도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한 듯하다. 그리고 언제 봤는지 나에게,

"아까 놀이터 있는 거 봤는데, 가고 싶어요. 놀이터에서 놀고 싶어요."

"아빠 오늘 여기 있는 Reading Log에 책 제목 다 쓰기 전에는 일어날 생각이 없는데? 15권은 읽어야 하는데 이제 5권 읽었으니 얼른 10권 더 읽고 일어나자."

"놀이터 가고 싶은데. 깜깜해지면 놀이터 못 가는데?"

"아직 깜깜해지려면 1시간 반이나 남았어. 아빠가 여기 문 닫을 때까지 책 읽고, 집에 가서 자전거 타고 기린 놀이터 가서 또 30분 이상 놀아줄게. 어때?"

"깜깜한 거 싫은데..."

그렇게 달래 놓고는 가져온 책 꾸러미를 보니 3권이 남았다.

"그러면 좋아. 여기 가져온 책들 중 3권 남았으니까 3권만 더 읽고, 놀이터에서 조금 놀고 집에 가자. 대신 자전거랑 기린 놀이터는 못 가는 거다?"

"예이~ 근데 3권 말고 2권만..."

"그건 안돼. 아빠가 15권이라 말했는데 3권 더 읽으면 8권이잖아. 그러면 집에 가서 7권을 더 읽어야 한다는 거야"

시무룩해진 아이가 마지못해 하며, "알았어요."

나머지 3권은 도저히 혼자서는 힘들어서 못 읽겠다며, 같이 읽자고 하여 꾸역꾸역 읽었고, 도서관에서 책을 다 보고 나면 다시 제자리에 꽂아 두거나 책 반납하는 곳에 두어야 한다는 규칙을 알려주고는 밖으로 나왔다.

 

아이는 요즘 낙엽을 밟을 때 나는 사각 거리는 소리를 즐긴다. 꼭 낙엽이 있는 곳으로 가서 점프하고, 낙엽을 손에 한 움큼 집어 들고 하늘에 휙 뿌리고는 달려간다든지 혼자 그렇게 하고 노는 것이 낭만이 있어 보인다. 얼른 핸드폰을 켜 사진기를 켜고 아이의 노는 모습을 담아본다. 오늘 하루 중 가장 밝은 모습이다.

 

아이가 갑자기 본인은 푸들이고 아빠는 비스킷이란다. 오늘 읽은 책에 등장하는 강아지들인데, 본인은 여자 강아지인 푸들을 하고 아빠는 남자 강아지인 비스킷을 하라는 거다. 그리고 영어로만 말해야 한단다. 그리고 단어를 모르면 이걸 영어로 어떻게 말해야 하냐고 묻고 알려주면 또 대화를 이어간다.

 

어제오늘 책에서 봤던 표현들을 가지고 본인이 하고 있는 행동을 최대한 문장으로 말하는 것을 보며, 이래서 책을 읽고, 표현을 계속 반복적으로 발화하면서 본인의 것으로 만들어 가는구나 하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된다. 최근 선생님께서도 영어로 말하는 빈도가 늘고 문장이 점점 길어지고 정확해진다고 하셨는데, 많은 부분 발전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어떠한 문장은 오히려 내가 하는 발음이나 문장이 어색한 것도 있었다.

 

날이 추워 오래 놀지는 못하고 약 30분가량 그렇게 놀고 난 후 다시 차에 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도서관에 다시 놀러 오고 싶냐 물어보니 다음에도 또 오고 싶다고 한다. 아이가 한글책, 영어책 가리지 않고 점점 읽는 빈도와 시간이 늘어나니 도서관에 데리고 다니는 것이 좋은 기회이고 경험이 될 것 같다. 오늘 도서관에 앉아 본인이 읽고 싶은 책을 찾아가며 읽고 있는 많은 아이들을 보면서 참 대단하다 느꼈는데, 조만간 우리 아이도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을 상상을 해보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제 장 볼 때 사지 못했던 고기를 사고자 마트에 다시 들렀다. 아이는 왜 마트에 다시 왔냐며 묻는다. 어제 고기를 못 사서 오늘 고기를 사야 한다니깐 군말 없이 마트를 따라 들어왔다. 주말이라 그런지 시식코너를 자그맣게 하고 있었는데 피자를 굽고 계셨다. 아이는 아주머니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어, 하나 좀 받을 수 있을까 여쭤보니 내어주셨다. 점심을 먹고 가지 않았던 터라 배고프다고 했었는데 허기짐에 피자를 보니 먹고 싶었나 보다. 아주머니는 쿠팡에서 파는 것보다 지금 더 싸니 얼른 들여가라고 하신다. 고기를 사는 것이 주목적이었기 때문에, 일단 고기를 사고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정육코너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머니께서 여행을 가신 터라 아이의 저녁식사를 집에서 다 해결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제 전단에서 봤던 불고기 거리가 필요했다. 11주년 기념으로 한우 불고기 거리를 1근에 9,900원에 판다는 말에 재차 들른 것이다. 불고기를 사고 뒤를 돌아보니 삼겹살도 지난주에 100g 당 2,980원이던 게 1,650원에 팔고 있어, 부랴부랴 1근짜리 포장을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냉장고 위를 보니 국거리는 100g 당 3,980원 아닌가?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안 보여 불고기 팔고 계시는 아주머니께 국거리 어디에 가면 사느냐 여쭈어보니 다 팔려서 없나 보다며, 옆에 양지를 그 가격에 주시겠다고 한 덩이를 집어 드셨다. 알고 보니 목심 국거리를 할인하는 거였는데, 양지를 같은 가격에 주신다니 이건 웬 횡재인가 싶다. 그래서 아주머니께 저 고기 많이 필요해서 제가 하나 고르겠다 말씀드리고, 옆에 1++ 치마 양지 1근을 골라 들었다.

 

어제 사려고 했을 때 발골하고 계시던 아저씨께서,

"내일 오세요. 고기는 내일 할인해요."라 말씀 주셔서 오늘 방문 한 것인데,

3가지를 40%~50% 할인된 가격에 그것도 3근을 넉넉하게 샀으니 마음이 어찌나 푸근해지던지. 요즘 말로 러키 비키다.

 

배가 고프다는 아이는 고기를 다 샀다는 말에 내 손을 이끌고는 다시 피자를 팔고 있는 곳으로 간다. 그러고는 그 앞에 서서 또 아주머니를 빤히 쳐다본다. 나에게 피자 좀 얻어보라는 무언의 압박처럼 느껴졌다.

"이거 그냥 교차해서 사도 돼요?"

"네, 아이가 배고픈 거 같은데 피자 좀 더 드릴까요?"

"네, 좀 주세요."

그 사이 나는 피자를 2개 집어 들었고, 아주머니께서는 아이 먹으라고 피자를 더 잘라서 종이컵에 싸 주셨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리는 터라 내심 맘에 걸리는 것이 있었는데, 다행이다.

 

집으로 돌아와 어제 사둔 바나나우유 하나를 우선 건네주고 부랴부랴 아이가 좋아하는 미역국을 끓였다. 배가 고프다고 보채지 않았다면, 오늘 저녁때 많은 반찬을 해두고자 했지만, 시계를 보니 저녁 먹고 숙제를 좀 더 할 시간이 필요해 보였기에, 미역국만 얼른 끓이고 잘라둔 햄을 구어 부랴부랴 저녁 식탁을 차렸다.

 

아이는 미역국이 맛있다며 그릇째 들고 국물을 마셨고, 더 달라고 한다. 내 입맛에 그렇게까지 맛있는 줄은 모르겠는데 아이가 그렇게 먹으니 맛이 점점 나아지는 듯하다. 내가 한 음식을 누군가 맛있게 먹어주면 기분이 좋다. 밥과 국을 싹싹 다 비워 깨끗하게 먹은 아이에게 감사하다.

 

바로 숙제를 시작하려다가 아이도 소화할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듯하여, 조금 더 놀라고 하고는 오늘 사가지고 온 불고기 거리를 꺼냈다. 오랜만에 불고기를 하는 터라 레시피도 다 잊어버리고, 배, 물엿이나 올리고당도 집에 없는 등 난감한 상황이다. 그래도 그냥 '심심하게 먹지 머'라는 생각으로 양념장을 만들고, 버섯, 양파, 당근, 대파를 숭덩숭덩 썰어 색깔이라도 화려하게 보일 수 있도록 넉넉하게 넣어 재워 두었다. 오늘 고기도 좋고, 채소들도 신선한 터라 그 맛에 먹는 거지 머 하며, 잘 재워졌길 바란다. 그리고 아이가 또 맛있다며 잘 먹어주길 기대해 본다.

 

주중에는 뮤지컬 연습을 우선으로 하여하다 보니 숙제가 많이 밀렸다. 아직 다 하지 못한 숙제를 해야 하기에 아이에게 공부를 하자고 하니 순간 기분이 쭈욱 다운되는 듯하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내일까지 해야 할 학교 숙제와 퀴즈 준비는 으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지 이것만 하고 잠을 자자고 먼저 제안을 한다.

 

눈을 보니 배는 부르고 따뜻해지니 많이 졸린 눈치다. 먼저 주중에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들었던 단어들이다 보니 아는 단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10개 중 2개 빼고는 다 기억이 난단다. 그러면 2개만 더 기억하면 되겠네? 그건 뭐 금세 하는 것이 아니겠냐며 얼른 집중해서 30분 만에 하고 자러 가자고 하니 아이도 눈에 힘을 준다. 그 모습이 정말 귀엽다. 그리고 정말 본인이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한 날부터 눈빛이 전과는 다르다. 많이 또렷해지고 눈에 힘도 들었고, 때로는 반짝반짝하다.

 

중간중간 늘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많은 것들을 깨우치고 있어, 단어를 읽을 때 어떻게 음절이 나눠지는지, 각 알파벳이 내는 소리의 규칙은 무엇인지, 악센트를 어디에 두면 어떤 소리가 나는지 반복을 통해 많이 깨우친 듯하다. 그리고 소리를 듣고 반대로 음절을 나누고 각각의 자음과 모음으로 분해시키는 역방향의 프로세스도 점차 깨우쳐 가는 듯하다.

 

음절의 구분이 사실 어려운 것이고, 그 음절의 구분이 어원의 구분과도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설명하려면 아직은 이른 시간이기는 하지만, 이미 알고 있을 법한 쉬운 단어가 어원이 되어 연결된 단어가 나올 때는 나누어 설명을 해주고 있는데, 그럴 때는 조금 더 쉽게 단어의 의미와 소리를 기억하고 단어 스펠링도 잘 맞추는 듯하다.

 

수학이든 언어든 결국은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이기 때문에, 그 규칙을 잘 이해한다면 숫자나 문자로 쓰인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 이기 때문에 아이에게 그 규칙을 이해할 수 있도록 반복적으로 설명을 해주고 있다. 아이 시기부터 계속 듣고 시간이 흐른다면 자연스레 기억에 남을 것이고, 그 기억을 가지고 활용을 해서 본인이 깨우치는 것이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주말은 나 자신에게 쏟는 시간보다는 가족에게 쏟는 시간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우치는 것도 많고 스스로 생각할 시간도 많은 듯하다. 하루가 짧은 듯하지만, 이렇게 하루를 정리해 보면 오늘 하루도 참으로 길고 알차게 보낸 것 같다.

 

내일부터 일주일간은 어머니의 도움을 못 받다 보니 더욱 바쁜 시간이 될 것 같다. 당장 주말에 해 놓기로 한 반찬부터 몇 개 만들어야 하고, 지난주에 올리지 못한 블로그 내용들도 있고, 쇼츠 공부도 해야 하고. 조금 더 부지런하게 움직여 보자.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