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 주저리

2025년 2월 22일 - 97일차

시나브로상승 2025. 2. 2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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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여행 1일]

작년 말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 소멸 이슈로 인해 한동안 전 세계 여행지를 검색하고, 블로그에 마일리지 현황을 올리는 등 갖은 노력을 쏟았다. 하지만, 마일리지 티켓을 올려놓으면 무얼 하나? 나갈 수 있는 일정이 나오지 않으니 그저 쳐다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와이프가 아이 방학기간 중 해외가 아닌 국내 여행지 중 하루 정도 연차를 내고 다녀올 수 있는 곳으로 알아봐 달라 하여 선택한 여행지는 여수이다.

 

마침 유퀴즈온더블록에 출연을 한 서울대 먹잘알 교수가 광양지역에 가서 닭구이를 먹어보아야 한다고 한 것을 보게 되었고, 순천에 가면 선암사, 송광사, 순천만 국가정원 등 아이와 가볼 만한 곳이 많았으며, 여수에는 아쿠아플래닛과 해상 케이블카 등이 있어 2박 3일 여행 코스로 안성맞춤이었다. 특히,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 가족에게 남도 음식은 언제나 만족을 하게 해주기에 주저 없이 여수행 마일리지 티켓을 끊었다.

 

이미 3개월 전에 티켓팅을 해두었기에, 3개월이라는 시간이 언제 오나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는데, 최근에 이런저런 일로 바빠 제대로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온 것 같다. 새벽 일찍 공항으로 가야 했기에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고 하고는 앉아서 약 1시간 반 정도 잔 것이 전부이다.

 

도저히 아침에 운전을 하기엔 위험할 듯하여 와이프에게 운전을 맡겼다. 와이프가 공항까지 운전하는 동안 세상모르고 잤다. 공항에 새벽 일찍 도착했음에도 사람들이 매우 많다. 제주행 비행기들이 5분 간격으로 줄지어있다. 큰 짐도 없고 어제 온라인 체크인을 마쳐 두었기에 바로 보안검색대로 향했고, 아직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다 5분 정도 걸려 통과를 하였다. 새벽에 제주행 비행기가 많아 사람들이 많고 붐빌까 노파심에 2시간 일찍 도착을 한 것인데 보안검색대 통과까지 25분 정도 걸렸으니, 너무 일찍 수속이 마쳐 버렸다. 거의 1시간 반을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 시간을 보내고 비행기에 오르니 금세 출발할 시간이다. 7시 30분 정각에 맞춰 이륙 준비에 들어섰고, 여수 공항에는 8시 22분에 착륙을 하였다. 45여 분의 비행시간이기에 무척 쾌적하다. 누군가 여수 지역 여행을 떠낸다고 한다면 비행기를 강력 추천하고자 한다.

 

그리고 카모아를 통해 이미 렌터카를 해두었는데, 렌터카 업체에서 주차장에 차량을 가져다 두고 차 안에 키를 두어 차량을 찾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고작 5분이다. 8시 35분이 되어서 차량을 찾았으니 이번 여행의 시작이 무척 좋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30여 년 전 부모님께서 유홍준 교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보시고, 남도 여행을 데려왔었다. 그 당시에는 전라도 지역까지 고속도로가 잘 되어있지 않았던 터라 순천까지 오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었고, 원래 가고자 했던 식당을 가기엔 너무 허기졌다. 그때 무작정 옆에 보이는 기사 식당에 들어갔었고, 15가지 정도 되는 반찬에 놀랐고, 맛에 한 번 더 놀랬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이 번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가 바로 '진일기사식당'이다. 30여 년 전에는 제육볶음을 주었는데, 그 메뉴는 사라지고 '김치찌개백반'과 '삼겹살 백반' 두 개를 하고 계셨다. 아침부터 삼겹살을 굽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마침 아이도 삼겹살을 먹고 싶지 않아 하여 김치찌개백반을 시켰다. 김치찌개가 나오기 전 밑반찬부터 하나 둘 맛을 봐 보았는데, 역시나 남도 음식이다. 메인으로 나온 김치찌개에 손을 대기도 전에 밑반찬으로 이미 공깃밥을 반 이상 먹어버렸다. 나머지 반 공기와 아이가 남긴 밥 반 공기를 김치찌개와 함께 곁들여 게눈 감추듯 해치워 버렸다.

 

배가 따뜻해지니 기분이 좋다. 10분 정도 차로 이동하여 유네스코에 등재된 선암사로 향했다. 아침부터 대형 버스들에서 내리는 등산객들도 있었고, 선암사로 오르는 길에 마주친 이미 내려오고 계신 분들도 다수 만났다. 다들 무척 부지런하다. 선암사로 오르는 길에 와이프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라도에 위치한 절이나 유적지를 가보면 자연의 경관과 건축물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경관이 하나의 공간이자 배경으로서 조화를 이루기에 그 규모가 더 커 보이고 장관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서울과 경기도 지역의 건축물들보다는 남도의 그것은 조금 두드러지는 특징을 가진 것 같다.

 

선암사의 산책은 45분 정도로 짧게 할애해두었지만, 아이는 올라가는 내내 자리에 주저앉아 돌멩이와 흙을 가지고 놀며 올라가는데 하세월이다. 차 안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산바람이 매섭다 보니 아이의 뭉그적 거림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니 더 춥게 느껴지고, 와이프 코는 새빨갛게 얼어버렸다. 반대로 아이 덕분에 자연의 경관을 조금 더 오래 느낄 수 있었다. 선암사에 오르는 길은 예전에는 좁은 길이었으나, 지금은 템플스테이 등을 하여 차가 올라갈 수 있는 길을 내 두었다. 편한 것은 좋으나 예전과 같은 자연과의 동화된 모습은 다소 줄었다. 유홍준 교수의 수정된 나의문화유산답사기의 내용에도 같은 지적이 나온다. 일부러 예전에 난 길로 돌아서 올라가 보기를 추천하는 등의 내용이 나온다.

아이는 선암사에서 내려오는 길 내내 놀이터를 가고 싶다고 하여 오는 길에 봐 두었던 승주초등학교로 향했다. 아이와 다닐 때는 항상 놀이터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초등학교 운동장 한편에 있는 그네, 철봉 및 미끄럼틀에서 잠시 놀고, 운동장에 나가 공을 차며 신나게 뛰어놀았다. 아이는 공을 차며 연신 넘어졌지만, 까르르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이렇게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니 안 데려갈 수가 없다.

 

아이와 잠시 승주초등학교에서 놀고 난 후 선암사 다음 목적지인 송광사로 향했다. 우리나라 3보 중 하나인 송광사는 그 규모부터 입이 떡 벌어진다. 그리고, 새롭게 건축된 건물들과 과거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건물들이 공존을 하고 있는데, 조화로움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내일 법정 스님 서거 15주년 준비로 매우 바빠 보였다. 사람들도 아침부터 많이 찾아와 절에 생기가 가득하다. 앞서 방문을 한 선암사는 송광사의 분위기와 비교하니 정말 절간 같다. 올라가는 길에 있는 쉼터에서 보살님들이 국화빵을 구어 나누어 주고 계셨다. 몸이 얼어 추위를 녹이고자 쉼터 안으로 들어갔고, 나누어 주는 국화빵을 허겁지겁 입에 가져가다 입안이 전부 다 데었다. 나의 모습을 보고 아이는 조심스럽게 후후 국화빵을 불어 식힌 후 입안으로 가져갔다. 집에서 팥이 들은 빵 등을 주어도 손사래를 치는 녀석인데, 국화빵을 먹고는 더 먹고 싶다고 했다. 따뜻한 물까지 곁들이니 얼어붙었던 몸이 사르르 녹았다.

원래 계획은 순천만국가정원 앞에서 식사를 하고 정원에 가서 산책을 하는 일정이었으나, 선암사, 순천만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 방문하기에는 다소 늦었고, 이번 여행의 가장 주된 이유인 광양지역의 닭구이를 먹으러 향했다. 원래 가고자 검색을 했던 식당들이 있었으나, 와이프가 검색을 더 해보고 결정한 곳은 '병암산장'이다. 옥룡계곡의 옆에 자리 잡은 곳으로 최근 광양 시내로 이동을 한 다른 집들보다는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야 해서 시간이 걸린다. 식당에 들어서니 이미 주차장에 차가 가득이고, 식당 안에 식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숯불에 구워 먹는 닭이라니 생소하다. 처음 해보는 터라 강한 불에 바로 구우니 금세 타버린다. 먹기도 전에 탄 것을 가위로 제거하는 것이 일이다. 두 번째 올릴 때부터는 요령이 생긴다. 먹잘알 교수 말로 고기의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것이 구워 먹는 방법이라는데, 닭을 구워 먹어보니, 확실히 맛이 좋다. 요즘 닭 숯불구이 식당이 여럿 생겼지만, 오랜 시간 동안 닭구이 집을 운영하고 있는 집에서 먹어보니 왜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이라 소개했는지 이해가 간다. 닭 녹두죽과 함께 먹으니 더할 나위 없이 궁합이 잘 맞는다. 운전을 해야 하는 터라 막걸리나 맥주와 함께 먹지 못해 조금 아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아침으로 먹은 음식과 더불어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

밥을 먹고 난 후 여수로 돌아가면 해넘이가 막 될 시간인 듯하여, 해상 케이블카를 타고 호텔로 들어가기로 했다. 주차장에 들어서니 이미 차가 가득하고 이동하는 사람들도 많다. 해넘이 시간에 맞춰 오긴 했지만, 대기로 인해 케이블카를 타며 해넘이를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하지만, 대기하는 동안 보니 전망대가 있다. 와이프는 기념품 가게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 아이 손을 붙잡고 부랴부랴 전망대로 뛰어 올라갔다. 매서운 바람에 몸이 절로 움츠려 들긴 했지만, 아이에게 포즈를 취해보라 하고는 빠르게 셔터를 눌러 사진을 찍고 후딱 내려왔다. 대기 순서 호출을 듣고 줄을 서니 한 20여 분 정도 대기를 한 후 케이블카를 탈 순서가 되었다. 20여 분 사이에 밖은 어둑어둑 해졌고, 야간 케이블카를 타게 되었다. 우리는 밑이 투명한 크리스탈 케이블카를 신청했으나 어둑해져 일반 케이블카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 된 점이 다소 아쉽다. 돌산에서 자산으로 향하는 중 바다 위 크루즈에서 불꽃놀이하는 것도 보게 되었고, 여러 가지 색깔로 반짝이는 야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자산 터미널에서 갈증을 해결하고 다시 돌산으로 넘어오는 길은 더 깜깜해졌고, 조명들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돌산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블루투스로 연결을 하여 '여수밤바다'를 들으며 케이블카를 타니 더 재미있는 시간이 되었다. 아이는 여수밤바다 노래가 좋다며 계속 틀어달라고 한다. 제법 듣는 귀가 좋은 아이다.

오래 돌아다니니 허기졌는지 호텔로 들어오기 전 편의점에 들러 라면을 포함하여 간식거리를 샀다. 아이는 언니 오빠들이 편의점에 앉아 라면을 먹는 것을 보고 부러웠는지, 본인도 편의점에 앉아 라면을 먹겠다고 한다. 잘 하지도 못하는 젓가락질을 하며 라면 하나를 금세 비워낸다.

 

새벽 4시 45분에 집에서 출발하여 하루를 알차게 보냈다. 바쁜 여정을 잘 쫓아와 준 아이도 고맙다. 리뷰를 다 읽어가며 선택을 했던 호텔도 괜찮다. 이번 여행은 참 알차고 재미있는 여행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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