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 근처 한 바퀴]
아침식사로 세 가지 옵션이 있다. 호텔 조식, 편의점 정식, 그리고 근처 아침 식사 되는 곳에서의 식사. 올 때까지만 해도 신용카드 혜택으로 조식을 선택하려 했지만, 크게 내키지 않는 눈치다. 어젯밤에 사다 놓은 삼각김밥과 구운 계란을 곁들인 편의점 정식을 고민해 봤지만 이 또한 그렇게 내키지 않고, 이미 새벽녘에 일어난 와이프는 컵라면과 구운 계란으로 우선 요기를 하여 김샜다. 이미 와이프는 아침을 나가서 먹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다. 느지막이 잠에서 깬 나에게 루트를 쭉 읊어준다.
"아침 식사는 하동관에서 할 거야. 그리고 블루보틀에 가서 커피를 한 잔 마실 거야. 블루보틀은 명동에도 있는데, 광화문점으로 갈 거야. 거기가 커. 이왕이면 청계천으로 해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커피를 마시고 시간이 되면 어제 못 갔던 덕수궁에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러고 나서 다시 방으로 와서 정리하고 체크아웃하면 돼."
파워 J인 와이프는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군더더기 없기에 그대로 앞장서 길을 찾아 나아간다.
설 연휴가 끝난 후의 주말이라 그런지 길거리에 사람들이 많지 않다. 외국인들이 더 많이 보일 정도다. 하동관에 도착하여 들어섰는데 한산하다. 원래 주말에는 한산한 건지 아니면 이번 주가 특별한 것인지 너무 쾌적하다. 자리에 앉아 숟가락, 젓가락을 세팅하니 금세 식사가 나온다. 겉보기에는 고기 몇 첨 올라간 맹물에 말아져 있는 밥 같은 느낌이지만, 국물을 한 숟가락 떠 입에 넣으니 구수하고 진한 고깃국물의 향이 입안 가득 풍성하게 펼쳐진다. 함께 제공되는 김치와 깍두기를 얹어 먹으니 더할 나위 없이 궁합이 좋다.

오후에 뮤지컬을 예매해두었기에 오전에 시간이 많지 않다. 그렇기에 배를 채우고 바로 다음 장소인 블루보틀을 찾아 나선다. 거리엔 여전히 사람이 많지 않고, 명동 거리엔 외국인이 더 많이 보인다. 블루보틀 명동점으로 가보니 테이크아웃 전문점이기에 앉아서 먹을 곳이 없어 원래 예정지인 광화문점을 향해 갔다. 빠른 길을 두고 일부러 청계천으로 돌아서 갔다.
서울 빛 초롱 축제가 어제까지 진행되었기에 아침부터 철거하는 분들이 나와 일하고 계셨다. 아직 철거되지 않은 것들이 있어 사진에 담아본다. 아이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을 가지고 노느라 여념이 없다. 고양이가 생선가게 못 지나가듯이 눈만 보면 그냥 지나치질 못한다.


저 멀리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 광화문 광장에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자들이 아침부터 분주하게 모여들어 집회 중이다. 상주, 대구, 군위에서 올라오는 관광버스들이 하나 둘 지나간다. 희한하게 다 그쪽 동네다.
블루보틀 광화문점은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이 위치한 건물의 1층에 있어 경찰이 지키고 있었다.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이 매장도 한산하다. 편히 자리를 잡아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아이는 함께 제공된 쿠키를 맛있게 먹었다.

바깥을 보니 한 손에는 태극기를 한 손에는 성조기를 든 노인 무리가 줄지어 간다.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로 향하는 무리 같다. 새벽부터 서울까지 올라오느라 피곤하셨을 텐데, 날씨까지 쌀쌀하니 올라오는 길이 힘들고, 살을 에는 추위에 고생이실 텐데, 집에서 들 쉬시지.
이미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라 덕수궁까지 가는 것을 무리다. 블루보틀에서 나와 다시 호텔로 향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 옆으로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 행렬이 무척이나 길다. 시위에 깔리는 노래를 듣던 중 어떤 노래가 좋았는지 아이는 노랫소리에 흥얼 거린다. 참 흥이 많은 아이다.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아침부터 명동거리를 갔다가 청계천을 따라 걸어 광화문에 닿아 다시 시청으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바삐 움직였다. 예전 인사동에서 일을 할 때는 시청과 명동까지 걷는 거리가 꽤 길다고 느꼈었는데, 오늘은 아이와 함께 걸음에도 그리 멀게 느껴지진 않았다. 중간중간 아이가 눈을 발견할 때마다 멈추기를 반복하다 보니 지치는 것도 덜하다.
출퇴근 등 일하는 시간에만 돌아다녔던 지역을 가족과 함께 오니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추억을 쌓는 시간이다.
[읽으면서 써먹는 어린이 감정 표현]
아이가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이다. 동일한 제목으로 책의 내용을 어린이 뮤지컬로 만들어 첫 선을 보였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조금 읽어봤던 터라 뮤지컬의 내용을 예상할 수 있었고, 내용대로 흘러가는 부분을 잘 표현한 것 같다. 덕분에 아이와 즐기며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작년에 <애니>와 <산타와 빈 양말> 등 퀄리티 높은 뮤지컬을 보다가 탈을 쓰고 나오는 어린이 뮤지컬을 보니 다소 심심하긴 하다. 하지만, 배우들이 성우처럼 연기를 해주다 보니 어린이들은 확실히 좋아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70여 분 진행되는 시간도 아이들이 즐기기에 적절한 듯하다.
다양한 노래들이 나오는데 모두 귀에 쏙쏙 박히고, 노래에 맞춰 배우들이 추는 율동이 재미있다. 아이는 일어서서 함께 춤을 추며 즐기고, 신이 바뀔 때마다 박수를 요란하게 친다. 어린이 뮤지컬을 보다 보니 노하우가 생긴 것이, 항상 중앙 자리의 양쪽 끝자리에 앉는다는 것이다. 극 중 또는 커튼콜 직전에 무대 아래로 내려와 관객들과의 호흡을 맞추는 시간이 있기 마련이기에 예매 시 우선순위를 두는 부분이다. 오늘도 배우들이 관객석으로 내려와 아이와 함께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 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미 책으로 읽은 내용을 뮤지컬로 보니 아이도 어려워하지 않고 온전히 즐기는 듯하여 보기가 좋다. 본인은 뮤지컬 언제 가냐고 물어보는 것 보니 오늘의 무대가 무척 재미있었나 보다.
[역마살 가족]
설 기간 중 만나지 못한 동생네 식구들이 주말을 기해 부모님 댁에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버지의 최근 베트남 자전거 여행 이야기가 나왔고, 이어서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을 드러내는 발언이 이어졌다.
언제나 그렇듯, 아버지와 어머니의 우선순위가 다르기에 벌어진 일이다. 아버지는 호주 여행을 앞두고 계시고, 이미 다음 주부터 호주 여행 전 몸만들기 일정을 세우고 계시는 상황이다.
어머니는 최근 고관절 수술했던 부위에 통증을 느끼셨던 터라, 이제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여행을 가기 어려워질까 마음이 조급하신 지 예전부터 가고 싶으셨던 이탈리아 돌로미티와 조지아 여행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신다.
아버지께서 작년부터 지금까지 어머니와 함께 하기 어려운 여행을 여러 차례 다녀오신 터라 어머니 입장에서는 호주 여행 이후에 본인과 여행을 함께해 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그러나 아버지가 확실하게 답을 주시지 않으니 서운하신 듯하다.
아버지는 본인에게 초점이 매우 강한 사람이다. 반면, 어머니는 이타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다. 이타적이나, 본인이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본인의 안위에 관심을 보이길 바라신다. 그런데, 아버지는 개인에 더 중심을 두다 보니 어머니가 기대하는 반응이 나오기 어렵다.
이러쿵저러쿵 이야기가 나왔지만, 내가 들어보니 아버지는 안 가겠다는 말씀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어머니가 다리에 통증을 느끼고 난 후에 조급하게 움직이시는 점, 이모와 외삼촌까지 참여가 확대될 수 있다는 부담감 등등을 종합하여 자식들이 의견을 하나둘씩 내어드렸다.
단둘이 가는 것이 이상적이며, 우선 어머니가 바라는 기간에 티케팅을 해두고, 어머니께서 바라는 대로 책에서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큰 얼개를 짜고, 아버지에게 나머지 세부 사항을 맡겨 계획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자유여행 일정이긴 하나 현지 가이드를 붙여서 운전 등에 대한 주담을 줄이고 여행에 조금 더 집중을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왜 그렇게 한 푼 두 푼 사용하는 데 있어 왜 그렇게 쩔쩔매시는지 모르겠다. 평생을 살아온 습관이라는 것이 무섭긴 한가보다.
아무튼, 아버지께서 호주 여행을 다녀오신 후에 세부 일정에 대해서 조금 더 논의하실 생각임을 드러내셨기에 일단락되었다. 이모와 외삼촌까지 확대하여 함께 가는 것도 추후에 결정할 일이다.
두 분의 이런 모습을 보면 역마살이 보통이 아니다. 나와 동생 또한 여행을 좋아하는 것 보면 우리 가족은 전부다 역마살이 대단한 것 같다.
그리고 올해 어머니께서 칠순이 되다 보니 전체 가족이 함께 하는 여행을 주문하셨다.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보니 시간을 맞추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한 번 빠르게 검색을 해보니 이번 추석 다음 날부터 그 주 토요일까지 4박 5일 일정이 좋아 보인다. 이 기간 중 일본과 베트남 등을 검색해 보니 비싸긴 하지만 갈 수 있는 여력은 있어 보였다. 일단 운 만 띄워 본 상황이니, 이 부분은 한 번 더 자세하게 검색을 더 해 본 후에 말씀을 드려야겠다.
여행 이야기로 시작해서 여행 이야기만 주야장천 했다. 부모님 두 분만 이야기를 했으면 서로 서운할 뻔한 이야기들을 자식들이 대변을 해가면서 이야기를 하니 어느 정도 이해를 하시는 부분도 있고, 아무튼 시끄럽기 그지없는 상황이었지만,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시간과 경제적인 여건만 된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떠나고 싶은 마음이다. 이놈의 역마살. 2월의 2번의 여행 계획이나 마무리 잘 짓고 다녀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