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호캉스]
얼마 만의 호캉스인가 모르겠다.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완화되면서 한동안 호캉스를 많이 다녔다. 가격도 많이 싸기도 했고, 여행을 다니고, 호텔 티어 매치 등으로 높은 등급을 해둔 터라 주말을 이용해서 포인트 숙박부터 저렴한 가격에 식사까지 해결하는 등의 메리트를 활용해 부쩍 다녔었다. 그러나 작년부터 호텔 숙박료가 오르기도 했고, 시간 여유도 줄어들어 어느샌가 호텔을 가지 않게 되었다.
신용카드에서 무료 1회 숙박권이 있음에도 여태껏 쓰지 않고 있었다. 토요일에 <읽으면서 바로 써먹는 어린이 감정 표현> 뮤지컬을 예매해 두었기에, 겸사겸사 마포를 중심으로 호텔을 뒤져 보았고, 무료 1회 숙박권으로 예약이 가능한 곳을 검색하던 중 시청 맞은편 더 플라자 호텔을 예약해 두었다.
예전에는 비싼 호텔이기도 하고 무료 숙박권이 있더라도 많은 포인트를 더했어야 했던 것 같은데, 2천 포인트만 더 얹으면 무료 숙박권을 사용할 수 있는 상태이기에 예약을 해두었었다. 그런데 이후에 다시 검색을 해보니 3천 포인트가 더 하락해 무료 숙박권만으로 숙박이 가능해졌다.
호텔에 도착을 하니 시청 앞에 떡 하니 있는 호텔이 좋아 보였다. 그러나 지하로 내려가니 오래된 건물의 느낌이 나긴 하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비에 들어가는데 좋긴 하더라. 방에 들어서는 순간 방이 조금 작은 점은 아쉽지만, 오래된 호텔일수록 냄새 때문에 강한 탈취제를 사용하여 나는 특유의 냄새가 있기 마련인데, 굉장히 깨끗하고 냄새도 나지 않아 첫인상은 들쑥날쑥하긴 했지만 긍정적인 마음이 더 강하다.
방에 들어서자 커튼이 촤악 열린다. 바깥으로 시청이 보이고, 시청광장에 특별 링크가 마련되어 스케이트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바깥에는 여전히 눈발이 날리고 있어 그 광경이 좋아 보인다.
나도 아이도 배가 고픈 관계로 일단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와이프와 연애를 할 때 이나니와요스케를 가본 적이 있다. 꽤나 특이한 스타일의 우동에 인상이 깊었기에, 저녁으로 이나니와요스케 본점으로 향했다. 예전에 먹었던 그 맛이 그대로일까 기대가 되기도 했고, 워낙 가까운 거리라 눈발이 날리고 바람이 세찬데 멀리까지 가기 싫어 내린 결정이기에 빨리 들어가 몸이라도 녹이고 싶었다.
여러 가지 메뉴를 골랐다. 우동, 오징어튀김, 고로케, 그리고 두부요리. 생맥주와 곁들여 먹기에 다 좋다. 추운 몸을 녹여주는 우동과 시원한 맥주에 먹는 3가지 요리는 다 맛이 좋아 기분을 금세 좋게 만들어 준다. 아이도 화려할 것 없이 기본에 충실한 우동의 맛이 좋은지 잘 먹는다. 와이프와 나는 맥주에 곁들이는 안주 같은 요리들에 만족스럽다.




식사 후 덕수궁을 가보고자 했으나, 여전히 눈발은 진눈깨비 같은 형태로 내리고 있다. 눈이 내려서인지 21시까지 오픈을 한다고 되어있는 궁의 입구는 닫혀있다. 식사 후 산책을 하고자 했지만, 그렇게 계획은 흐지부지되었고, 그대로 그냥 방으로 돌아왔다.
마땅히 할 것이 없어 사우나에 가 지친 몸을 달래고 나오니 노곤하다. 아이와 와이프는 핸드폰으로 각자 동영상을 보느라 정신이 없다. 그냥 심심해 켜 놓은 TV에서 요즘 와이프가 즐겨보는 <아주 완벽한 비서>의 1~8회 모아보기가 하고 있다. 할 게 없어 보다 보니 재미있다. 와이프가 왜 설 연휴 동안 푹 빠져 보게 되는지 알 거 같다. 와이프도 9회부터 같이 볼 수 있겠다며 좋아하는 눈치다.
오기 전에는 덕수궁 산책부터 시간이 되면 명동 야시장을 돌아다녀 볼까 생각을 해보았지만, 현실은 저녁 식사 후 방 안에서 각자 하고픈 걸 하는 자유 시간이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힘 빼고 그 순간 제일 하고 싶은 것을 하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머릿속이 가볍다. 그냥 그렇게 TV에 나오는 것을 지켜보다 뒤를 돌아보니 와이프도 아이도 어느새 잠들어있다. 잠들어 있는 둘의 표정이 좋다. 가장 편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그대로 잠들어버린 것을 보니 오랜만의 호캉스가 만족스러운 듯하다. 그렇기에 나도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