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대물림과 성장 환경의 영향력]
어제 와이프의 예전 직장 동료이자, 지금은 오랜 벗이 된 분께서 아이와 함께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지금은 호주에 살고 계시고, 한국에 방문을 하게 되면 와이프는 어김없이 만나는 편이다. 우리 아이와 1살 터울인 아이도 함께 와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엄마는 엄마들끼리 수다 삼매경이었다. 와이프는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은데, 아침에 어제 나온 이야기를 하나 해준다.
"OO 씨는 부자인데, 부자티를 전혀 내고 다니지 않잖아. 그래서 물어봤더니 '언니는 학창 시절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다 공부를 잘했잖아? 그래서 언니가 공부를 잘하는 것인지 모르고 지냈지 않았어? 나도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형편이 다 좋은 편이라 딱히 내가 부유한 집이다 아니다를 느끼지 않고 그냥 평범하게 산 것 같아.'라고 답을 했어."
"집이 얼마나 부유하길래?"
"그냥 부모님의 양대 할아버지 때부터 그랬나 봐."
"대단하군. 전혀 모르겠던데. 말투에서 여유가 묻어 나오는 게 느껴지긴 했어."
아침에 아이 등교 준비를 하며 나눈 대화라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내용이다.
오전에 와이프로부터 카톡이 날아왔다. 이번에 지원을 한 지원자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 우리 회사 최종 면접자들을 보면, 외고, 과학고, 자사고, 아니면 해외 국제 학교 등을 나온 인재들이야. 회사 내에 집이 부유하거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직원들이 많은 편인데, 최근 수시 채용을 여러 번 올리고 진행해 왔지만 맘에 들지 않아서 계속 채용을 미뤄왔던 찰나, 결국 면접을 진행하고자 서류를 통과시킨 지원자는 과학고 출신 지원자네? 결국에는 저런 부류의 출신들이 눈에 들어오네.'
가족창에서 나누는 대화이다 보니 대부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성면접을 통과해야 하는 허들은 있다 보니 그걸 넘지 못하는 사람도 간혹 생긴다는 등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그중에서 조금 더 이야기가 된 내용은 결국 우리 때와 달리 지금의 환경에서는 부유한 집안의 아이들이 사교육 시장 또는 더 많은 경험을 토대로 유리한 고지에서 진학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고, 소위 엘리트 코스나 상위 집단에 부유한 집안의 아이들이 훈련으로 만들어져 자리를 차지하는 경유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도 뭐 뻔한 소리가 되어버린 지 오래이기 때문에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심도 있는 대화를 한 것은 아니다.
오후에는 어제 와이프의 벗의 동생을 소개받아 만남을 가졌다. 와이프의 친구분의 인성이 좋고, 와이프와 오랜 기간 알고 지낸 것처럼 좋은 사람이기에 그분의 동생 또한 좋은 사람이겠구나 하는 선입견을 가지고 일면식도 없이 그냥 전화번호 하나 달랑 받고 연락을 드린 후 만나게 되었다.
대학원 때 일하고 싶었던 국제금융기구에서 일을 하기도 했고, 컨설팅 사에서 일도 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는 1인 기업으로 혼자 프로젝트를 따다 일을 하고 계신 분이다.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계시기도 하고, 동경을 해오던 일을 한 경험을 갖고 계셔 말씀을 들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에 주저 없이 연락을 드리고 찾아뵙게 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와이프의 친구분처럼 굉장히 차분하고, 여유로웠으며,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 외에 다른 일들을 더 펼쳐나가 보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삶을 살고 계신 분이다. 구체적인 액수에 대한 말씀은 없었지만, 현재 일을 하지 않아도 수입이 있고, 세금이 많이 나가 기업을 세워 기업에 현금을 적립하며 아이들에게 배당으로 지분을 분배할 목적으로 운영 중이라고 하셨다. 대학원까지 해외에서 나왔으며, 시민권자이고, 국제기구와 회계법인에서 근무를 하다 그만두고 공부를 더 해보려고 하다가 코로나19로 인해 공부에 대한 생각을 잠시 미뤄두다 시작한 프로젝트로 지금까지 이렇게 지내고 있다고 하셨다. 사무실에 놓여있는 각종 서적과 자격증을 보니 말씀은 겸손하게 하지만 내공이 있어 보인다. 말씀에 군더더기가 별로 없다. 소탈하고 꾸밈이 없다. 누나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며 처음 뵈었지만 신뢰가 간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부분이 필요로 하기에 나를 만나고 싶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고, 나도 함께 할 때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겠다 생각도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교집합이 있기도 했고, 새로운 분야이기에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와이프가 보내 놓은 카톡을 보고 답을 보내줬다.
'이따 OO 씨 동생이랑 이야기 끝나면 연락 줘. 궁금하니까.'
'나 지금 빨리 OO이 셔틀 내리는 거 받아야 해서 시윤이 만나고 이야기할게.'
'응, 그려. 기분이 어때? 기분이 중요한데.'
'엄청 여유로워.'
'일 같이 할 거 같아? 서로 좋은 느낌이냐고! 대화 마치고 뒤가 켕기거나 그런 건?'
'뒤가 켕기진 않아.'
'뭐야 어떻다는 거야?'
(전화를 걸어) "나 지금 운전 중이라서 메시지 더 이상 못 쓰겠다. 이따가 퇴근하고 오면 말해줄게. 오늘 뭐 일을 같이 하자 그런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니고, 그냥 그분이 어떤 일을 하고 계시고, 나는 어떤 일을 해왔고 그런 이야기를 나눈 거라 다음에 뵈면 조금 더 진전이 있겠지?"
오늘은 정말 일자리를 구하러 간다는 느낌보다는 낯 선 이 지역으로 와서 동네 친구 하나 없는 터라, 동네 친구 사귀러 간다는 생각으로 갔던 것이다. 그런데, 집에서 놀고 있는 남편이 비슷한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궁금했나 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키를 내가 쥐고 있는 게 아니라 그분이 쥐고 있으니, 그 부분은 내가 답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 듯하다. 일단, 이 지역에서, 나름 여유롭게 성향 잘 맞는 사람과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일 것이다. 보수 등이 중요한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오늘 나눈 대화에서 가장 임팩트가 컸던 부분은 이 분야를 하고 있는 재무 분석가가 국내 시장에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미 회사에서 일을 할 때 하던 분야도 국내 시장에 하는 사람이 많지 않고, 심지어 제대로 하는 사람도 많지 않은 분야를 경험한 바 있다. 좋은 점은 적을 두고 있으면 일거리가 계속 들어온다는 것이고, 반대로 나쁜 점은 그 적이 없어지면 일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1년에 프로젝트가 몇 건 없기 때문에 그들만의 리그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성격을 잘 알고, 미래에는 당연히 핵심가치로 떠오르는 분야이기에 관심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와이프 전화를 끊고 나니 와이프 출근 전 와이프가 나에게 했던 이야기, 가족창에서 카톡으로 나눈 대화, 그리고 오후에 만남을 통해 이야기 나눈 것들을 곰곰이 돌이켜 보니 '부의 대물림과 성장 환경의 영향력'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와이프와 나는 스스로 공부를 했고, 학창 시절 나름 잘해서 좋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훈련을 받아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가는 그런 환경이었다면 아마 나는 그 루트를 타지 못했을 것 같다. 와이프와 내가 생각하는 공통적인 생각 중 하나는 본인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자기 스스로의 동기부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 동기부여로 인한 의지를 바탕으로 꾸준히 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21세기의 교육 환경에서 간과하고 있었던 점 중 하나는 바로 이미 짜인 각본이고, 이 점에 대해서는 정말 무지하다. 의대를 가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이 짜인 커리큘럼에 들어가네 마네 그런 이야기를 하면 이미 내 교육에 대한 철학과 다르기에 대화에 집중을 하기 어렵다. 우리 아이를 그런 환경에 노출을 강제로 하고 맞지 않는 옷임에도 불구하고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하나도 없다. 본인이 그렇게 하고 싶고, 인내해 가며 본인이 이루고자 하는 꿈이 그것이라면 뒷바라지를 할 생각은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본인이 하고자 하는 꿈을 좇는 것에 대한 뒷바라지를 할 생각이다.
그런데, 오늘 느낀 점은 바로 '어디에서 여유가 오는가?'에 대한 힌트다. 지금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런 환경 하의 아이들이 향후 성장을 했을 때, 어떠한 것을 경험을 해야지 소위 말하는 본인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힌트이지, 이러한 환경 하의 모든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소위 말하는 사회적 지위를 갖는 사람으로 성장을 할 것이다의 이야기는 아니다. 오늘 생각을 곱씹어 보면서 힌트를 가지고 내린 결론이다.
어학연수를 떠난 후 미국에서 유학을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주재원의 자녀들 또는 홈스테이나 기숙학교로 유학을 온 아이들을 많이 가르쳤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다 비슷하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그냥 부모님이 강제로 시키니 마지못해 하는 애들이 10명 중 8명이다. 그럼 남은 2명은 어떤 아이인가? 1명은 본인이 하고자 하는 꿈이 명확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좋은 대학에 원하는 학과를 진학해야 한다는 목표가 강하게 성립되어 있는 학생이다. 나머지 1명은 소위 말하는 착한 학생이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씀이 곧 법이고, 나는 그분들의 말씀을 잘 듣고, 하라는 대로 잘할 것이라는 생각만 하는 학생이다. 대학교 진학은 확실히 2명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나머지 8명의 학생들보다 현저하게 좋다. 현재 아이들의 직장을 보면 어떨까? 생각보다 크게 차이는 나지 않는 것 같다. 결국은 본인들이 원하는 직업군을 선택해서 살고 있다. 미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부모님들과 상담을 하면서 제일 강조했던 게, 결국 아이들이 원하는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진학을 해주는 것이 시키지 않아도 잘할 수 있는 길이고 스스로 즐겁게 자기 꿈을 펼쳐 나가며 행복하게 살지 않을까라는 말씀을 드렸었다. 그게 1% 정도의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그런데, 회사를 다닐 때 회사에서 만날 한국 교육과정 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를 한 친구들과 비교를 했을 때, 너무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MZ 세대들은 자기만의 개성이 뚜렷하고 개인의 관심사를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확실히 한국에서 교육을 받고 올라온 친구들과 앞서 말한 친구들에 극명한 차이가 있다. 바로 앞에 왜 여유로울까?에 대한 부분이다. 한국에서 교육을 하고 입사를 한 친구들은 일반적으로 여유가 없다. 개성이 강하지만, 본인의 생각을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방어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도 보편적으로 느낀 점이다.
반면, 해외 교육과정을 밟거나 특목고나 자사고를 다닌 친구들은 확실히 자기 생각에 대한 표출에 거부감이 덜한 편이다. 특히 국내보다 해외에서 나온 친구들은 더 적극적이며, 말하는데 여유롭다.
사대주의가 강한 것이 아니라 그냥 10여 년 이상 직장 생활을 하고,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두 부류에 대한 차이점이 두드려 지기에 오늘 그런 생각을 해서 적어보는 것이다. 불편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아이를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키워야 할까 고민을 하는 연결고리로서 뻗어 나온 한 가지 가지에 대한 나의 분석의 결과물인 것이다.
하던 이야기를 더 하자면, 그렇다면 일단 환경 자체는 확실히 해외에서 공부를 하며 토론에 익숙하고 본인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치는 것이 익숙한 환경에서 지낸 아이들이 확실히 조금 더 사고의 유연함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부의 대물림이라 언급을 했었는데, 부유하기 때문에 미래에 경제적인 고민을 할 필요가 없고, 오롯이 현재 본인이 가지고 있는 관심사에 대하여 고민을 할 시간적이 여유가 월등히 많은 것이다. 가령, 생각은 일론 머스크처럼 아이디어가 많지만, 당장 3월에 등록금을 낼 돈이 없는 학생이라고 한다면, 어떻게든 등록금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지,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실행이 우선시되지 못한다. 그렇게 아이디어가 10개가 있다면 아이디어의 확장을 1개도 제대로 할 여유가 없을 수 있다.
근데, 앞서 오늘 뵈었던 분처럼, 또는 내가 유학시절 가르쳤던 초, 중, 고 학생들처럼 1년에 학비만 5만 불 이상 들어가고, 홈스테이 비용까지 하면 1년에 8만 불씩 써가며 적게는 3년, 길게는 12년을 보내는 부모들의 재력은 나 같은 사람은 상상도 하기 어렵다. 본인은 일을 하지 않아도 세금만 50%를 내야 한다니, 최소한으로만 직장인이라면 몇억 원대 연봉을 받는 사람과 견줄 수 있다. 그걸 비판하고자 함은 전혀 아니다. 그런 환경 하에 있다고 해서 모두가 다 본인의 꿈을 위해 공부하고, 직장을 다니거나 사업체를 운영하며 성실히 자기만의 꿈을 펼쳐가며 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도 부지기수이기 때문에, 이 또한 엄청 어려운 일임을 잘 알고 있다.
블로그 게시판의 이름처럼 장황하게 주저리주저리 떠들기는 했지만, 아이가 나중에 본인이 하고픈 것을 빠르게 찾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본인 스스로가 개척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여유가 필요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본인이 하고픈 것만 생각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필요하다. 여유가 있어야 사고의 유연함도 더 쉽게 확장될 수 있다.
그리고 주위 환경이다. 부모들이 기를 쓰고 좋은 학교에 보내려 하는 이유는 앞서 이야기 한대로 주위의 환경에서 영향을 받고 배우는 것이 있기에 그러하다. 공부하는 자세일 수도 있고, 아이들이 아이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훨씬 더 많기에 공부 외 적인 다른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 특히 긍정적이고 자신과 타인에게 도움이 더 많이 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제공되는 환경을 선호하는 이유다.
돈을 좇는 삶을 살고자 함은 아니다. 수중에 가진 것도 없다. 그래서 아이에게 물려줄 것도 지금으로서는 없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나중에 아이가 조금 더 커서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할 때, 자금이 부족해 그 부분 때문에 발목 잡히지 않도록 금전적인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정도는 만들어 놓거나, 스스로 자금을 빠르게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을 전수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유를 부릴 수 있는 부모가 제공해 준 환경. 오늘 고민을 불러일으키고 가이드를 제시해 준 힌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