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의 새해 첫 해맞이]
"오빠! 6시 47분이다. 아~~ 얼른 일어나!"
와이프의 짧지만 강한 외침에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잠옷을 벗고 부랴부랴 보이는 옷을 걸쳐 입는다. 잠이 덜 깨어 허둥지둥 대며 이리저리 부산하게 움직이지만 머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 아직 단잠에 빠져 일어나지 못하는 아이에게,
"새해가 밝았어. 이제 8살이야."라고 말하자,
"나 이제 8살이야."라며 아이도 벌떡 일어나 앉는다. 아직도 눈을 뜨지 못한 채 멍하니 침대에 앉아 새해를 맞이한다. 이리저리 부산하게 움직인 나는 아이 옷장에서 전에 입었던 두꺼운 옷을 대충 찾아와 아이에게 입힌다. 새해 첫날부터 이게 뭐람.
일출을 보기 위해 거잠포 선착장에 가기로 했고, 대충 5시에는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며 적어도 30분 전까지는 도착을 하리라 마음먹었었지만, 녹록지 않다. 대충을 싸 매고 나갈 채비를 하며 핸드폰을 켜고 티맵으로 거잠포 선착장을 검색해 본다.
'1시간 19분, 2099대 가는 중'
"거잠포 선착장 못 가. 이미 늦었어."
"헐..."
와이프에게 거잠포 선착장으로 가면 일출을 볼 수 없을 거라고 하니, 와이프도 실망이 섞인 짧은 탄식을 내뱉는다.
"왜, 거기 말고, 가까이 소래포구도 있지 않았나?"
"일단 거기로 가보자."
더 이상 묻고 따지지도 않고, 아이를 들쳐 매고 집을 나선다. 아직 밖은 깜깜하다. 소래습지생태공원으로 향하는 길은 한적하다. '일출 보러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더니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진 채 엑셀을 계속 밟는다. 하나, 둘, 셋, 넷. 하나둘씩 앞에 차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다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아, 이 사람들 다 소래습지생태공원 가나? 차 막히는 거 아냐?' 좀 전에 가졌던 생각이 180도 바뀌어 주차장이 이미 만석이라 주차하다 시간을 다 보낼까 불안하다. '소래습지생태공원 (우회전)' 표지판이 보인다. 앞서가는 차량들이 우회전 깜빡이를 넣는다. '아...'
이미 눈앞에 백 명도 더 되는 인원들이 개미 떼처럼 한곳을 향해서 걷고 있었다. 수많은 인파 속에 차량들은 엉금엉금 기어간다. 앞에 어떤 차량이 왼쪽 깜빡이를 넣고 골목으로 들어간다. '에라, 운에 맡기자' 나도 덩달아 왼쪽 깜빡이를 넣고 따라가려고 차를 왼쪽으로 틀어본다. 길을 줄지어 건너는 사람들의 행렬에 골목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한다. 도무지 행렬이 끊길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저 멀리 유모차를 끌고 오는 젊은 부부가 보인다. 앞선 사람들과의 거리가 다소 있어 잠깐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얼른 문 열고 양해를 구해봐" 와이프도 그 짧은 순간에 같은 생각인 듯하다. 나는 이미 문을 열고자 손을 레버에 올려둔 상태이다.
"저기, 죄송합니다만 잠깐 지나갈게요."

골목으로 들어서니 그 짧은 공간에서 나오는 차량과 마주한다. 겨우겨우 차가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라 '괜히 들어왔나?' 하는 생각이 엄습해온다. 일어나는 순간부터 운전대를 잡고 있는 지금의 순간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앞 차의 꽁무니만 따라서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저 멀리 차를 댈만한 공간이 보인다. 깜빡이를 넣고 우측으로 붙는다. 앞 차도같이 그 공간에 차를 대려고 붙는다. 다들 머릿속에는 해가 뜨기 전에 일출을 보기 좋은 장소로 가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한 듯, 차를 대고는 차에서 미끄러져 나와 한곳을 향해 걸어간다. 앞에 가는 개미가 뿌려 놓은 페로몬을 따라가 듯 우리도 아까 봤던 사람들의 행렬에 이끌려 들어가 섞인 채 한곳을 향해 걷는다.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따라나섰지만, 사람들의 행렬에 몸을 맡긴 채 군말 없이 함께 걸어간다. 그냥 지금은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그 광경이 웃기다. 여전히 잠을 다 깨지 않아 정신없고, 추워 평소 같으면 안아달라고 할 텐데, 8살이 되긴 했나 보다.
이미 소래습지생태공원 입구의 다리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물이 빠져 말라있는 바닥에 내려가 있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 지점은 아직이다. 전 날 봐두었던 사진을 찍기 위한 장소인 풍차가 보이지 않는다. 두리번거리며 무작정 풍차를 찾는다. 10시 방향 저 멀리 3개의 풍차가 보인다.
"저기!"
"7시 47분까지 6분 남았는데, 갈 수 있을까?"
"뛰면 3분이야. 달려!"
아이는 또 영문도 모른 채 손에 이끌려 뛰기 시작한다. 그냥 무작정 뛰는 건 이미 이골이 났다. 아침 등교 때마다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아빠 손에 이끌려 뛰기를 부지기수다. 이미 훈련된 선수이기에 무작정 뛰는 데는 문제가 없다.
(빰빰빠바 빠바~ 빰빰빠바바~)
출발 드림팀 브금을 입으로 내며 달린다. 아이는 그냥 그 상황이 재미있다. 웃으며 뛰다 보니 잠이 깨나보다.
저 멀리 풍차 주위, 그리고 풍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자리에 사람들이 많이 서 있다. 아예 그 장소에 가보니 일출을 보기 위한 포토존인지 기다랗게 세워진 구조물도 있다. 빈 공간을 찾아본다.
"아빠, 저기"
저 멀리 하늘을 보니 기러기 떼가 날아간다. 와일드로봇 영화를 본 이후로 기러기 떼가 편대비행을 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는 반가움에 소리친다. 기러기 떼 옆에 드론이 쫓고 있다. 일출을 기다리며 심심한 마음을 달래보나 보다.
여명이 밝아오는 자리를 보니 구름이 가득하다. 여명이 드리워지는 광경이 멋있어 사진을 찍어보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핸드폰이 없다. '아... 차에 핸드폰을 두고 왔네...'
"오빠, 얼른 사진 좀 찍어."
"어... 나 핸드폰 차에 두고 왔나 봐. 없어."
"으이구. 언제 즈음이면 사람 구실하려나..."
새해 벽두부터 한 소리를 듣는다. 아이 얼굴을 잡고는
"저기를 보고 있으면 해가 올라올 거야. 여기 모인 사람들이 해 뜨는 것 보려고 온 거야. 해가 올라오면 소원을 빌어야 해. 무슨 소원 빌지 생각해 봐."
괜히 와이프의 핀잔이 계속될까 말을 끊고 아이에게 설명을 해본다.
(7시 50분)
아직도 해가 보이지 않는다. 수평선에서 올라오는 일출 시간이 7시 47분이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지점은 야트막한 언덕과 그 위에 나무들이 높게 자라고 있어 아직 보이지 않는다.
점점 붉은색으로 주위가 변하는 모습만이 언제 해님이 발그레한 얼굴을 드러낼까 집중하게 한다. 구름이 많아 구름 아랫부분이 해의 빛으로 인해 노란색, 주황색, 붉은색으로 점차 변해 가는 모습에 이제 해님이 얼굴을 드러낼 시간이 다가왔음을 인지한다.
"저기 보고 있어봐. 이제 해님 머리가 저 언덕 너머로 보일 거야."
아이에게 그리 말을 했지만, 구름이 많아 보일까 걱정이다. 그냥 바람을 내비친 발언이었다.
"어, 저기! 올라온다!" 짧게 아이에게 소리친다. '거봐, 아빠는 틀리지 않았어!'라며 속으로 짧게 소리친다. 아이는 이미 지루할 만큼 지루해져 있는 상황이라 별다른 감흥이 없어 보인다.
"생각해둔 소원을 빌어봐."
정작 나는 생각해둔 소원이 없다. 그냥 즉석에서 떠올려 본다.
'25년 을사년에는 우리 가족 건강하고, 지긋지긋한 24년의 많은 아픔과 불안정한 정국이 해소되어 웃으며 행복한 한 해 되게 해주세요.'
하나 둘 자리를 뜨며 돌아가는 사람들이 생기자 아이는
"우리는 언제 가? 집으로 가?" 하고는 묻는다.
"잠깐 저기 서봐. 사진 찍어줄게."
피곤하고 졸리고 집에 가고 싶지만, 사진을 찍자는 말에 포즈를 취한다. 어디서 배웠는지 고개를 한쪽으로 삐딱하게 젖히고는 포즈를 잡는다. 그렇게 찍으면 이쁘다고 생각하나 보다. 몇 장을 찍고 차를 댄 곳으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데 저 멀리 구름 사이로 동그란 해님이 나타났다.
"야! 해님이다! 얼른 저기 서봐"
해님이 얼굴을 드리울 때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운이 좋다. 풍차 배경에 사진을 담을 수 있다.

우리 아이의 생해 첫 새해 해맞이는 이렇게 끝이 났다.
[머리를 예쁘게 다듬다]
집으로 돌아오자 맞아 아침 준비를 한다. 추위에 떨며 배를 곯아 허기짐을 참기 어려운지 아이는 과자를 달라고 소리친다.
"8살이 되었는데, 누가 이렇게 소리를 치나?"
8살이 된 게 무슨 벼슬이 된 것 마냥 어깨에 뽕이 가득 들어간 아이에게 '8살이 되었는데, 블라블라'는 씨알이 잘 먹힌다.

전 날 밤늦게까지 해둔 반찬을 하나둘씩 꺼내본다. 장모님께서 아이 먹으라고 챙겨주신 멸치와 미역국, 그리고 김장김치까지 곁들이니 11첩 반상이 마련되었다. '하는 내내 이 맛이 맞는 건가?' 했던 깻잎 지를 담은 통을 여는 순간 '어, 제법 냄새가 나네?' 했는데, 와이프가 제일 먼저 집어 입에 넣고는
"이거 맛있네? 어떻게 한 거야? 엄마가 해준 거랑 많이 다르지 않네?"
"어, 그거 그냥 간장, 고춧가루, 올리고당, 다진 마늘 넣은 양념장을 얹기만 하면 돼. 그런데 처음에 맛이 안 나는 거야. 그래서 자기가 담은 국간장을 한 스푼 더 넣었더니 이렇게 풍미가 사네."
그렇다. 새해 첫날부터 와이프의 기분을 좋게 해주어야 한 해가 편하다. 그런데 사실이다. 와이프가 담은 간장은 음식 맛을 잘 살려준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허기짐에 와이프와 나는 허겁지겁 게눈 감추듯이 밥을 비웠다. 아이는 과자를 하나 먹어서인지 어기적 거리며 밥을 먹는다.
"8살 되면 혼자서도 밥 잘 먹는다고 했던 아이는 어디 갔지?"
벌써부터 아이는 표정으로 '그놈의 8살 타령'이라 말을 한다. 그러게 말하지 전에 좀 알아서 잘하면 오죽 좋아?
[새해맞이 꽃단장]
아침을 먹고 또 부랴부랴 새해를 맞이하여 예약을 해둔 미용실로 향한다. 지금 머리를 해주고 계시는 선생님은 작년에 원장이 되셨다. 우리나라에서 제일로 큰 헤어숍 프랜차이즈인 '준오헤어'의 새로운 지점 원장이다. 만 30세의 나이로 원장이 되었으니 대단하지 않은가?
지금은 베트남으로 이민 가 인플루언서의 남편으로 살고 계신 승리 선생님을 이어 막 신입 디자이너로서 소개를 해주셨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맡아 해주셨으니 만으로 7년째 인연을 맺고 있다. 별다른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깔끔하게 해드리겠습니다' 한 마디를 던져 주시고는 뚝딱 마무리를 해주시니, 와이프의 표현을 빌려 '헤어숍 유목민'이 되는 것을 상상하기 싫다.

와이프는 손 편지 건네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의미 있는 사람들에게는 꼭 손 편지를 쓴다. 예약시간이 다 되어가 초조한데 꾹꾹 한 글자 한 글자 소중하게 글을 써 내려간다. 이미 예약시간 안에 가는 것은 무리다. 신호등에 걸리는 시간조차 아까워 조금 돌아서 갔는데, 15분 거리를 8분 만에 갔다. 와이프 덕분에 새로운 길을 개척했으니 좋은 일도 하나 추가!
[어제오늘 맛있게 먹었어요]
와이프는 외식을 할 때마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이거 아버님이 좋아하실 거 같아', '이건 어머님도 드실 수 있지 않을까?'하고 평을 할 때가 있다. 시부모님이 어렵다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시부모님을 떠올리는 것을 보면 참 고맙다.
어제, 오늘은 몇 년 전에 저렇게 말을 했던 식당 두 곳을 방문했다. 어제는 가는 해를 기념하여, 오늘은 새해를 맞이하여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다. 부모님께서 올라오시고 나서 여러 맛있게 먹은 식당을 하나 둘 소개해 드리고 있다.
어제는 '황성얼큰오징어찌개'를 다녀왔다.
아이와 함께 식당을 방문하면 음식 사진을 찍기가 어렵다. 아이가 음식을 기다리기 전 핸드폰을 보고 싶다고 조를 때가 많고, 막상 음식이 나오면 허겁지겁 먹느라 사진을 찍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와이프가 끓이기 전 찍어둔 사진 한 장이 있다. 여기에 다진 마늘 세 스푼, 고춧가루 세 스푼을 올려 팔팔 끓여준다.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재료가 신선하고 푸짐하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오늘은 '이집트경양식'이다.
돈가스가 나오자마자 까먹지 않고 사진을 한 장 찍는다. 내가 시킨 등심돈가스 사진만 찍었고, 안심돈가스와 치킨가스를 찍는 것은 잊은 채 사진을 찍고 허겁지겁 입에 가져갔다.

부모님께서는 어제, 오늘 모두 매우 만족하신 모양이다. 어제, 오늘 우리가 운이 좋은지, 서둘러서 그런지 우리가 식당에 들어오고 나서 뒤이어 사람들이 줄지어 서는 것을 보고 우선 놀라셨고, 음식이 나온 후 한 입을 먹어 보시고서는 고개를 끄덕이여 왜 줄을 서는지 납득을 하신 모습이다. 와이프는 본인이 맛있다고 한 집을 시부모님께서 좋아하는 모습에 흡족해 보인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첫 번째 일기]
크리스마스 날 사둔 일기책을 아이가 가져온다. 사두고 아직 쓰지 않았었는데, '8살'이 되니 일기를 쓰겠단다. '지도 8살 타령하면서...'

아직 혼자서 쓰기는 무리다. 하나, 둘 일기 쓰는 법을 익히고, 그림으로 쓰고 싶은 내용을 표현해 보라고 했다. 오늘 머리를 깎은 것을 그렸다. 오늘 한 수많은 일들 중 머리를 예쁘게 다듬은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 한다. 해맞이를 그릴 줄 알았는데... 내용은 아직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옆에서 불러주고 받아쓰기를 했다. 읽는 것은 제법 하지만, 쓰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 나는 대로 일단 써 내려가는 것이 기특하다. 받침의 연음 현상을 설명은 해주고 있지만, 아직 그 부분까지 완벽하게 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말하는 내용을 잘 옮겨 써 내려가고, 띄어쓰기를 잘 익혀 나가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시작이 아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