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 주저리

2024년 12월 27일 - 40일차

시나브로상승 2024. 12. 28.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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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안과를 다녀왔다. 최근 가까운 것을 보는데 전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가끔 왼쪽 눈 위쪽이 뻐근하기도 하고 했었다. 와이프도 검사를 오랫동안 하지 않아 오늘 연차를 내고 함께 다녀오자고 했다.

 

지인 중에 의사나 검사가 있으면 좋다고 한다. 와이프 동기가 안과 선생님이라 오늘 오전으로 예약을 잡게 되었고, 어젯밤에 아이를 부모님께 맡겨두고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차를 가지고 가는 시간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간이나 얼추 비슷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 차를 가져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터라 내린 선택인데,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다. 운전으로 인한 피곤함이 덜하기 때문에 환승이나 인파에 섞여 가는 것을 감내한다면 훨씬 쾌적하다.

 

아침부터 내원한 사람들이 제법이다. 의사 선생님보다도 눈 검사를 도와주는 선생님들이 훨씬 많다. 예약 시간에 맞춰 오니 하나 둘 검진을 마치고 금세 선생님을 볼 수 있었다. 3년 전과 지금 눈의 상태는 비슷하다고 한다. 시력도 변한 것 없고, 망막의 상태 등 모든 것이 괜찮다며 지금처럼 지내도 무방하다고 하신다. 나와 와이프 모두 3년 전 상태와 비슷하다는 결과를 들었기에 둘의 이야기보다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에 시간 내어 한 번 방문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쳤다. 아이도 이제 눈 검사를 해보는 것을 추천받아 다음번에 같이 데리고 와 보려고 한다. 지인이 의사 선생님이니 참으로 신뢰가 가고 편하다. 보통 병원에 가게 되면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3분도 채 되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오랜 시간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1시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모든 검진과 진료를 마치게 되어 가까운 신세계 백화점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나와 지하 1층으로 향하는데 백화점과 Netflix에서 '오징어 게임 2'를 맞이하여 다양한 상품들을 콜라보하여 특별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다양한 브랜드와 콜라보 하여 다양한 굿즈를 제공하고 있다. 그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KAWS와 콜라보를 한 영희 피규어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리세일을 위한 것으로 예상되는데, 한정판이라 그런지 가격도 46만 원이나 하는데 수십 명이 줄 서 있었다. 이미 리세일 사이트에서 55만 원에 올라와 있기도 하다. 피규어를 수집하는 사람들에게 KAWS와 콜라보한 것이라 의미가 있겠다만, 46만 원이나 주고 살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는 나로서는 이해가 잘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뜻이겠지? 나는 아직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가 보다.

 

굿즈를 보고 나니 와이프가 배가 고프다며 멀 먹고 더 돌자고 한다. 이곳저곳을 둘러봐도 앉아서 먹을 곳이 없다. 옆에 직원분께 여쭤보니 조금 더 앞에 가면 앉아서 먹을 곳이 나온다고 하셔 그쪽으로 가보니 'Five Guys'가 눈앞에 나타났다. 와이프를 쳐다보자 동시에 Five Guys가 어때? 하고 물어본다. 통했다.

 

미국에 유학을 갔을 때, 친구가 하루는 햄버거를 먹고 와서는 진짜 맛있다며 함께 가자고 해서 찾아갔던 곳이 바로 Five Guys이다. 그것도 처음 문을 열었던 그 장소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눈앞에 쌓여 있는 땅콩과 고소한 땅콩기름 튀김 냄새가 가득했던 그 가게가 아직도 선명하다. 그 외에도 나중에 렌트를 했던 동네 쇼핑센터에서, 그리고 대학원에서 몇 블록 떨어진 버락 오바마도 즐겨 찾았던 그 체인점까지 다양한 곳에서 먹었던 그 Five Guys다. 쉑쉑 버거도 비싸다고 생각하는데, Five Guys 버거는 그보다도 1.5배가량 비싼데 먹어보고 싶었다. 그릴에 직접 구워진 육즙 가득한 패티에 축 늘어져 녹은 체더치즈, 기본에 충실한 치즈 버거. 사이즈가 엄청 크다. 한동안 한국에서 햄버거를 먹다 보니 그 크기가 이제는 너무 커 보인다. 이미 큰 것을 알고 있어 프렌치프라이는 시키지도 않았다. 옆 테이블에서 프렌치프라이를 여는데 그 땅콩기름 냄새가 확 풍겨져 나온다.

"62번 준비되었습니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픽업해온다. 평소라면 먹기 전에 사진이라도 찍어두는데, 반가운 마음에 햄버거를 싸고 있는 포일을 그대로 벗겨내고 바로 입으로 가져가 앙하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육즙 가득한 두꺼운 패티와 잘 녹은 치즈의 풍미가 입안에 퍼져나가며 행복감이 그대로 요동친다. 15년도 더 된 그때의 추억이 스르륵 지나간다. 맥도널드에서 1불짜리 맥더블과 맥치킨을 먹던 놈이 돈 많은 집 도련님들 따라서 가격도 모른 채 따라가 배부르다며 싱글 패티 버거 1개 주문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들 양이 푸짐한지 몰라 프렌치프라이를 나눠먹고, 땅콩을 잔뜩 가져와 테이블에 펼쳐 놓고 먹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당시에는 미래에 대한 걱정 따위 없이 그저 친구들과 수다 떨고 노는 것이 재미있었는데.

 

와이프는 내가 오랫동안 입고 있던 경량 패딩을 대체할 것을 봐두었다며, 나를 끌고 올라갔다. 색깔도 좋고 가볍다. 그런데 하나 걸리는 것은 다운 소재 경량 패딩이 아닌 합성섬유로 채워진 것이라는 점이다. 왠지 아침 또는 오후에 아이를 데리러 나갈 때 입으면 추울 것 같았다. 평소에는 내가 적극적으로 제품을 찾아보거나 입어보거나 하지 않는다. 이왕이면 그대로 다운 소재 경량 패딩이 좋을 것 같아 여러 매장을 돌아다녀 봤다. 그런데, 와이프가 골라준 패딩처럼 쨍하니 밝은 패딩이 없었다. 남성용은 죄다 왜 어둡고 채도가 낮은 제품들만 있는지... 여러 제품을 봤지만 와이프는 별로 내켜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보자고 하고 Columbia 매장에 가서 하나 보고 고민을 하다가 맞은편 Patagoina에서 초반에 봤던 제품을 다시 보니 괜찮아 보이는 것 같다며 한 번 입어보라고 한다. 색깔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이왕 살 거라면 Patagonia나 Arcteryx의 경량 패딩을 사고 싶었기에 결국 Patagonia에서 사게 되었다. Patagonia 제품을 사고 싶었던 이유는 제품 구매 비용의 일부를 Patagonia 지역 환경 기금으로 기부되고, 평생 수선이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직접 입어보고 설명을 들으니 더욱 매력적이다. 와이프도 하나 사게 되면 여러 개 사게 될까 봐 오늘 하루는 자제를 하는 분위기다. 이제 오래된 경량 패딩은 잘 놔두고, 새로 산 패딩 잘 입을게요.

 

집에 오는 길에 어젯밤에 부모님 댁에 맡겨 보지 못한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왔다. 아이 핑계로 그동안 안 먹었던 치킨을 시켜 먹었다. 치킨은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이다. 다른 음식 이름을 잘 모르는 것인지, 머 먹고 싶은지 물어보면 어김없이 치킨이다. 뼈 있는 치킨을 시키면 보통 껍데기만 먹고 살은 버리는 경우가 많아, 순살치킨으로 시켰다. 치킨 배달이 오고 자리에 앉자 아이가 "엄마, 몇 개 먹을 거야?", "아빠는 몇 개 먹을 거야?" 하고 묻는다. 엄마는 '3개?', 아빠는 '많이'라고 말하자, "엄마는 그럼 3개 먹고, 아빠는 5개만 먹어요. 나머지는 내가 다 먹을 거야."라고 말한다. 어이가 없는 상황이다. 제아무리 치킨을 좋아한다손 치더라도 모로 보나 뱃살로 보나 아빠가 가장 많이 먹어야 하는데 말이다. 하나하나 먹을 때마다 눈치가 보인다. 아이가 잠시 딴청을 피우거나 집중하지 않을 때 얼른 하나를 몰래 찍어 입속에 넣고는 얼른 오물오물 씹는다. 아이는 눈이 마주칠 때마다 몇 개 먹었는지 묻는다. 내가 다섯 개를 먹고 여섯 개째 찍어 먹으려 하니 내 포크를 빼앗아 간다. 얄밉다. 먹는 것 가지고 치사하게 굴다니. 정말 치킨이 좋은가 보다. 욕심내는 모습을 보니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잠깐 그렇게 와이프랑 그 모습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정말 치킨을 혼자서 거의 다 먹는다. 배가 뽈록 나왔는데, 다 어디로 들어간 것일까?

 

충분히 먹어서 그런지, 아니면 한 주가 고되었는지 와이프 옆에 홀랑 눕고는 이내 잠들어 버린다. 캠프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한 주 동안 잘 지내준 것 같다. 학교보다 어려운 레벨인데 잘 따라가고 재미있어하니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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