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 주저리

2024년 12월 25일 - 38일차

시나브로상승 2024. 12. 26.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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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간 꾸준하게 어떠한 것을 계속하는 것이 이렇게나 힘든 일이다.

 

그제도, 어제도 그냥 아이를 재우다가 같이 널브러져 잠이 들었고, 어제는 어떠한 코멘트조차 남기지 못한 채 새벽을 맞이하였다. 아침부터 와이프는 구독자로서 왜 블로그에 글이 없냐며 성화다. 나도 알고 있는데, 와이프가 저러니 괜히 민망하다. 이불을 폭 뒤집어쓰고는 이 상황을 애써 외면해 본다.

 

그래도 아이를 등원 시키고 오늘 할 일 리스트를 적는데, 가장 먼저 적은 내용이 블로그에 밀린 내용 올리기이다. 보통 하루 정리하는데 적어도 1시간 남짓은 걸리니, 2개 밀린 것을 올리는데, 2시간 이상이 걸릴 것이다.

 

다 쓰고 나면,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겠지. 근데 평소에는 밥 생각이 많이 안 나는데 1개를 쓰고 나니 밥부터 먹고 싶다. 쓸데없는 소리는 여기서 그만두고...

 

24일 내용 마지막에 아이 머리맡에 선물을 두고 잠들었다 했다. 아침에 와이프는 아이에게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두고 가셨다고 빨리 일어나 확인해 보라며 소리친다. 전날 10시간 이상 자보자고 말을 해 놓고는 7시 반도 안된 시각인데 우리를 깨운다. 본인은 3시인가 4인가 일어났다나 모라나? 난 10시간 이상의 단꿈을 꾸는 것이 목표였다고!

 

아이마저도 일찍 일어나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뜯어 보고는 기분이 좋아서 빨리 일어나라고 성화다. 헬로키티 햄버거 가게 조립을 선물로 주었다. (와이프가 선택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굉장히 잘한 선택인 듯싶다. 요즘 아이는 종이접기에 푹 빠져있는 상태다. 종이접기 책을 보고 접기도 하고, 유튜브 네모 아저씨 영상을 보며 따라 접기도 한다. 이처럼 매뉴얼을 따라서 하나하나 따라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조립완구 역시 매뉴얼을 해독하고, 필요한 부속을 하나하나 찾아서 차례차례 해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종이접기와 유사하다.

 

크기가 그렇게 큰 제품은 아니기에 1시간이면 다 만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이의 속도로는 대략 8~10시간 정도가 걸릴 것 같다. 옆에서 내가 만들어 주면 후딱 만들 수 있겠지만, 오롯이 아이가 매뉴얼을 읽고, 수많은 부속들 중에서 필요한 것을 찾고, 그것을 하나하나 조립해 나가며 완성된 모습을 통해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도록 옆에서 도움을 요청할 때를 대비해 지켜만 봤다. 항상 아기 같게 만 느껴지는 아이는 매뉴얼을 혼자서 보고는 하나하나 잘 해나간다. 작은 부속의 경우 정교하게 조립하는 것이 다소 약하기는 하나 다른 것을 할 때 슬며시 가져와 꾹꾹 눌러 다음에 이어갈 수 있게만 도와준다.

 

평소에는 잘 사용하지 않았었지만, 아이와 조립을 하면서 쓴 용어들을 적어보았다.

가로, 세로, 붙이다, 조립하다, 누르다, 포개다, 합치다, 쌓다, 쌓아 올리다, 반대로, 돌려서, 모서리, 정교하게, Stack, 매뉴얼, 해독, x 칸짜리, 얇은 블록, 두꺼운 블록, 길쭉한 블록, 네모난 블록 등등

 

새로운 표현들을 들으니 조립을 하면서 따라서 말도 해보고 이거 맞냐며 물어보기도 하고, 본인이 그 표현을 다시 쓰기도 한다. 백날 이 단어의 뜻은 이거고 저거고 해봐야 소용이 없다. 그냥 놀이를 하다가 집중하고 있을 때 상황에 맞춰 다양한 단어를 언급해 주고, 반복적으로 사용해 주는 것이 아이의 어휘력에 도움이 된다. 일상에서 계속 사용하는 것을 강조하셨는데, 일부러 비슷한 의미나 상황에 여러 가지 단어를 던져주니 아이도 곧잘 따라 하고 비슷한 상황이 다른 어휘라도 같은 것으로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동안 이런 노출을 많이 시켜주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아이가 준비가 되어있는 상황이고 여전히 스펀지처럼 잘 흡수하고 있기 때문에, 함께 많이 놀아주면서 다양한 노출을 지속적으로 해줘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옆에서 아이에게 방법에 대해서 일체 말을 해주지 않았다. 스스로 방법을 찾고, 스스로 해나가 완성하는 기쁨을 스스로 맛보게 하기 위해서다. 눈에서는 빛이 나고,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한다. 블록의 크기가 다양하다 보니 정말 작은 블록을 조립할 때는 소근육을 잘 사용하여 정교함을 보여야 한다. 조금만 비뚤어져도 해당 블록을 정교하게 하고자 노력하고, 잘 안 끼워지면 주먹을 쥐어 손망치질을 하기도 한다. 아이에게

"이야, 너 손망치도 사용할 줄 알아?" 하고 말하니,

"망치 없는데?" 하고 대답한다.

"네가 주먹을 쥐고 망치처럼 쿵쿵 내리치잖아? 그래서 손을 망치처럼 사용하고 있으니, 그걸 손망치라고 하는 거야" 하고 말해주니,

"아, 손망치. (쿵쿵쿵) 아빠, 나 손망치 잘하지?"

 

신효원 작가님의 「언어능력을 키우는 아이의 말하기 연습」에서 나온 일화들과 비슷한 상황이 나에게도 생겼고, 선생님께서 딸에게 했던 방식을 답습하여 나도 적용을 해본다. 아이는 이 상황에 집중을 하고 있기에 평소보다 반응도 좋고, 말을 하는 것 또한 재미있어 한다. 장난도 쳐가면서 상황을 100% 즐기고 있는 모습이 보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와이프가 브런치를 먹으러 가자 하며 만들기를 중지하고, 나갈 채비를 한다. 아이는 더 하고 싶어 하긴 했지만, 배가 고픈지 순순히 자리를 일어난다. 차를 타고 브런치 가게로 가는데, 아이가

"아빠? 여기 뮤지컬 하러 가는 길인데? 지금 뮤지컬 하러 가?" 하고 묻는다.

 

아기 때부터 길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밝다. 1번 가본 곳들은 거의 다 기억을 한다. 어두운 시골길을 지나가도, '여기 할아버지 집인데?', 톨게이트를 지나면, '서점 할머니 집 거의 다 왔어?' 등등 주위 사물을 잘 기억하는 편이다.

 

카페에 들어서니 이미 사람들이 많다. 크리스마스 아침부터 왜 이렇게 사람들이 부지런한 건지. 이 카페는 참 특이하다. 올 때마다 외국인 손님들이 자리를 잡고 수다 삼매경이다. 더 크고, 더 좋은 카페들도 많은데 유독 외국인 손님이 많은 이유를 잘 모르겠다. 음식이 본인들 고국의 맛인가? 아무튼 맛있다. 특히 오믈렛을 팬케이크 가루로 한 번 더 싸서 마무리 지은 다음 그 위에 살사 소스와 루꼴라, 그리고 사워크림을 올려서 주었는데, 특히나 맛이 있었다.

 

카페 정보 ☞ https://naver.me/xHgI3rp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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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p.naver.com

 

 

아침식사 후 교보문고에 들었다. 와이프는 내 크리스마스 선물로 충주시 김선태 주무관의 책 「홍보의 神」을 주문해 두어 찾으러 가자고 하였고, 아이가 계속 물감 책을 사고 싶다고 하여 들렀다. 책 외에도 와이프는 각종 문구류와 카드를 샀다. 무엇보다 중학교에 진학하는 조카 녀석에게 선물을 하고자 하였고, Lamy 샤프펜슬에 이름을 각인하여 준비를 했다. 앞선 글에도 말했지만, 와이프는 참으로 세심하다. 용돈을 주고 필요한 것을 사서 쓰라 하는 것이 편하겠지만, 내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선물은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에게 필요할만하고, 내 돈을 주고 사기에 어려우며, 기억에 남을 것을 줘야 한다'라고 항상 대답한다. 아이에게 샤프펜슬의 색깔을 고르라고 하니 '핑크'를 골라준다. '언니는 핑크를 좋아하잖아'라고 말을 하는데, 내가 알기로는 민트를 좋아했던 거 같다. 다행히 민트색 샤프펜슬은 없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이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손부터 닦는다. 필시 무언가 요구할 것이 있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잘하는 행동을 할 때는 으레 요구사항이 따라온다. 아니나 다를까 그림을 그릴 것이니 물통에 물을 빨리 채워달란다. 물통에 물을 채워다 주고, 미술 가운을 입혀주니 오전에 봤던 캐리 TV의 엘리 언니를 따라 한다. 그림을 그리며 색깔을 이렇게 만들 거고, 이렇게 색칠을 할 거고, 그림을 다 그리고 나면 완성된 모습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미디어의 노출이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 없는 긍정적인 면을 보여준다. 다만, 일방적인 소통의 방식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다소 아쉬움은 있지만, 다양한 표현을 써가며 혼자 노는 것이지만 가상의 누군가에게 대화를 하며 노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다.

 

늦은 오후에는 와이프가 미리 예약을 해둔 뮤지컬 「산타와 빈양말」을 보기 위해 또 집을 나섰다. 아침에 많이 잠을 못 잔 터라 집에서 출발하자마자 차에서 곯아떨어졌다. 아이도 금세 곯아떨어졌다. 둘 모두 잘 잤다. 크리스마스 기간 중 다 어디 놀러 갔는지 길은 한산했다고 한다. 1시간여 만에 강동아트센터에 도착을 하였다. 처음 와보는 곳인데 매우 쾌적하고 주차 공간도 많아 맘에 들었다.

 

와이프 말로는 앞에 오케스트라 석이라 자리가 6~7번째 정도 된다고 했었는데, 막상 앉아보니 무대 바로 앞이다. 맨 앞자리는 처음이다. 무대가 시작하고 나니 소리가 엄청나게 커서 아이는 싫다고 귀를 막아달라고 한다. 하지만, 이내 무대에 배우들이 나오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니 손뼉을 마주치며 흥이 금세 오른다. 아이를 포함하여 가족 모두가 뮤지컬을 좋아하는 편이라 아이가 볼 수 있는 뮤지컬을 몇 번 봤는데, 확실히 지방보다는 서울에서 하는 공연의 퀄리티가 높고, 작은 극단이 하는 것보다는 감독이 있고 캐스팅을 한 무대가 확실히 좋다.

 

지난번 관람을 한 「애니」의 경우에는 워낙 유명한 배우들이 출연을 하다 보니 극의 퀄리티가 말도 못 하게 좋았다. 그런데, 이번 공연도 스케일 면에서는 비교되긴 하나, 배우들의 연기력은 매우 수준이 높았고, 특히 아역배우들의 연기력이 상당했다. '찰리'역의 한은서(http://www.playdb.co.kr/artistdb/detail.asp?ManNo=54972&part=013003)

 

공연의 모든 것 - 플레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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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친구인데, 대사를 할 때 딕션이 매우 정확하고, 노래 수준도 매우 높으며, 특히 얼굴 근육을 전부 사용하며 표정이 각양각색인 것이 마치 영화 「마스크」의 짐캐리를 보고 놀랬던 것과 같은 놀램을 느꼈다. 아주 미인형은 아니지만, 커 가면서 더 매력적인 인상으로 변할 수 있고, 지금 그대로 간다고 했을 때 심은경과 같은 연기력이 뒷받침되는 배우로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뮤지컬 배우라고 한다면 좀 더 기회가 크지 않을까 한다.

 

지난번 「애니」의 최은영(http://www.playdb.co.kr/artistdb/detail.asp?ManNo=49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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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만큼의 인지도는 아직 없는 듯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이 든다. 「산타와 빈양말」 이후에 큰 무대로 진출하는 아역배우들이 있던데, 내년, 내 후년에는 좀 더 큰 뮤지컬에서 만날 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

친구도 함께 기대가 된다. 이목구비가 서구적으로 생겼고, 얼굴이 작은 편이라 뮤지컬뿐만 아니라 TV에서도 관심을 보일 것 같다. 노래도 굉장히 잘하는 편이기도 하고.

 

아이가 다니고 있는 뮤지컬 학원에서도 이번에 「명성왕후」 '세자' 역에 박노아(http://www.playdb.co.kr/artistdb/detail.asp?ManNo=53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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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캐스팅되었다. 그리고 딩동댕 유치원의 메인 배우 이노엘이란 친구도 있는데, 새해에 또 좋은 소식이 있는 것 같다.

 

우리 아이는 배우를 꿈꾼다거나 시키고자 보내는 것은 아니다. 그저 본인이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말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자 보낸 것인데, 결과적으로 대만족이다. 쭈볏거림이 사라졌고, 다양한 친구들과 지내며 사회성도 많이 길러졌으며, 지난번 학원 자체의 무대에도 서면서 재미있어 했다. 본인이 하고 싶어 하고, 재미있어하면 그만이다. 다니기 싫다고 말할 때까지는 계속 보낼 생각이고, 이렇게 재미있는 다양한 뮤지컬을 관람하면서 직접 하지 않아도 나중에 커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요소로서 즐길 수 있게 해주고 싶다.

 

이렇게 하루를 또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삐 보냈고, 집에 와 급하게 분식 3종 세트를 해서 먹고 나니 나른해져 그대로 아이를 재우다가 쓰러져 잠들어 버렸다. 이런 이유로 이제서야 하루를 정리해 올린다. 늦게라도 빠뜨리지 않고 정리해서 올려야지. 어렵게 만들어 가고 있는 습관이 하루아침에 없어지면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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