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계엄령 선포로 너무나 화가 나면서도 무서웠다. 옆에 누워 자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과거 우리 부모님들 세대에서 겪었던 군부 정치, 유신 정권의 통제가 일상인 세상에서 살아갈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니 그러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게 새근새근 자고 있는 녀석을 보며 꼭 껴안아주었다. 나의 몸은 떨리고 긴장되는 마음에 차갑게 식어있었지만, 아이의 몸은 너무나도 따뜻했다. 아이를 안아준 것은 나였지만, 오히려 나의 몸이 녹았고, 떨리는 마음은 진정되었다.
내가 계속해서 계엄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터라 자고 있던 와이프도 잠에서 깼다. 그러고는 뒤늦게 상황을 인지하고, 여기저기에서 날아온 메시지와 대화를 보느라 와이프도 다시 잠에 들지 못하였다. 나는 계속되는 야간 선물 시장 상황과 환율 추이를 보면서 지난 8월 5일의 엔 캐리 때의 악몽이 떠오르며 좀처럼 잠에 들지 못했다. 와이프가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오고는 나도 가서 따뜻한 물 한 잔 마시고 몸을 좀 진정시켜 보라 했다. 효과가 있었다. 따뜻한 물을 마시고 온 후 그대로 잠이 들었다.
45분 정도 잤을까? 국회에 모인 국회의원들이 계엄령 해제에 대한 의안을 발제하고 190명 투표, 190명 찬성이라는 신속한 결정을 통해 대통령의 일방적인 계엄령의 해제를 전달했다는 뉴스 중계 소리에 맞춰 와이프의 탄성에 나도 잠이 깨 함께 보았다.
1년 후배인 오승훈 아나운서가 뉴스 속보를 진행하고 있었다. 손석희 아나운서를 닮고 싶어 아나운서가 되었다는 녀석은 이제 PD수첩과 계엄 상황의 뉴스 속보를 진행하는 어엿한 시사 전문 아나운서로 성장했다. 학창 시절 까불거리고 장난기 많았던 녀석이었는데 진중하고 차분하게 진행하는 모습이 다소 어색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신뢰를 주고 안정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니 격세지감이다. 꿈을 갖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을 했던 후배 녀석의 모습, 그리고 힘들었던 시기를 딛고 일어선 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 맘이 가는 듯하다. 항상 응원한다, 승훈아.
계엄령 해제 표결 가결 소식을 듣던 중 와이프는 그대로 잠이 들었고, 나도 이제 잠을 편히 잘 수 있겠다 싶어 패드 전원을 끄고 다시 눈을 감았다.
아침에 아이와 와이프 모두 일어나 배가 고프다고 하는 통에 깼지만, 비몽사몽이다. 잠을 깊게 자지 못한 듯하다. 하지만 그래도 아이까지 일찍 일어난 터라 셋이 아침을 먹을 수 있으니 부랴부랴 아침을 준비하고 함께 먹었다. 오래간만이다. 저녁은 그래도 간간이 함께 먹지만 주중에 아침을 셋이 같이 먹는 것을 쉽지 않다. 아이의 등교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밥이 입으로 들어가고 있는지 코로 들어가고 있는지 모르게 먹었다. 맛있게 먹어서가 아니라 정신이 없어서 그냥 배를 채우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뒤늦게 실업급여를 신청을 하여, 오늘에서야 고용복지센터에 방문을 했다. 가는 길에 마주친 많은 사람들이 서로 또는 핸드폰 너머로 간밤에 있었던 계엄령에 대한 이야기다. 대부분 계엄령의 상황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다만, 이재명과 한동훈 두 명의 차기 대선 후보에 대한 의견에 대해서는 편이 갈리는 듯하다. 여기까지는 뭐 이해가 간다. 각자 본인이 지지하는 정당이 있을 것이고, 그에 따라 해당 당의 대표,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을 지지하는 것은 십분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고용센터 앞에 모여 계시던 나이 지긋한 분들께서 계엄 상황에서 이재명과 한동훈을 체포했거나 사살했어야지 하는 발언을 들었을 때는 깜짝 놀랐다. 민주화를 통해 어렵게 이루어 낸 자유민주주의에 대해서 일절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발언에 대한민국의 후진국과 같은 민낯이 남아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오늘 하루는 계속되는 '도대체 왜 계엄령을 선포한 것이지? 이렇게까지 허술하기 짝이 없는 계엄을 한 의도가 무엇일까? 이러한 방법으로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을까?' 하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여전히 그 답을 모르겠다. 각종 뉴스 매체와 여기저기 단톡방에서 들리는 다양한 이유를 들어봐도 나의 속을 시원하게 뚫어줄 명쾌한 답은 없었다.
1979년 12월 12일의 쿠데타를 그린 '서울의 봄'에서 봤던 일들이 2024년 12월 3일에 벌어졌다는 것이 놀랍다. 그저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 허술하기 짝이 없고, 시대가 변한지라 여기저기 생중계되는 상황에서 강제 무력 진압 등을 할 수 없었기에 제대로 된 작전을 수행하지 못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간 밤의 짧은 3시간이라는 시간에 벌어졌던 눈앞의 사건은 충분히 나를 흔들고 겁먹게 하기에 충분했다. '서울의 봄'을 보면서 느꼈던 긴장과 공포보다 훨씬 강력했고 두려웠다.
지금 이렇게 해제가 된 상황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계엄령 선포와 동시에 국회로 달려가 몸으로 막았던 시민들, 어쩔 수 없이 명령이기에 출동을 하였지만 과격한 행동을 금하고 유혈사태로 확대 시 지지 않은 군인, 경찰들, 그리고 빠르게 국회로 모여 계엄령 해제 의안을 발제하고 전원 찬성의 가결로 이끌어 준 국회의원들 모두에게 감사한다.
전 세계에 창피한 치부를 드러냈지만, 그 이면에 또 순기능으로 작용하는 높은 시민의식과 사리 분별 가능한 군/경, 그리고 삼권분리를 통해 적절히 견제를 하는 모습 등 대한민국의 높은 사회 수준의 모습 또한 함께 보여주며 균형을 갖춘 모습을 보여준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이유야 어쨌든 대통령의 긴급 계엄령 선포로 인하여 뭉치기 어려웠던 국민들의 통합을 조금은 이끌어 내지 않았나 싶다.
앞으로가 중요할 듯하다. 그리고 정치는 관심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국민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모이게 되면 강력한 천둥소리 보다 더 큰 소리가 됨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