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와 미련의 딜레마]
아침부터 집 안이 요란하다. 와이프가 분주하게 움직이며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버릴 것들을 선별한다.
나는 버리는 것을 잘 못한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가 그러셨고, 아버지도 그러셨다. 평소 잘 쓰이지 않더라도 언제 한 번 쓸 만한 기회가 생기거나, 아직 쓸만하다면 그냥 두는 편이다.
특히 이번은 아이 방이 타깃이다. 그동안 학교에서 가져온 자료들, 만날 똑같은 것들을 접어대는 색종이들, 책등이 다 꺼내져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쓰레기봉투 하나를 놓고 놔둘 것과 버릴 것으로 구분만 지어진 채 버릴 것이라고 생각된 것들은 가리지 않고 봉투 안으로 던져진다. 내가 옆에서 보고 있었다면, '아직 그거 쓸만한데. 그거 잘 펴서 다시 눌러두면 또 쓸 수 있어.' 등의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반면, 와이프는 '오랫동안 쓰지 않았다면 불필요한 것이야.'라는 말과 함께 정리하는 것을 항상 주문한다.
와이프의 말처럼 버려야 할 물건들이 집에 계속 쌓인다면 공간도 낭비이고, 찾기도 어려워지기에 버리는 것이 맞다. 정리 정돈의 경우, 한 번 쌓으면 그 위에 계속 쌓아 올린다는 것이 거의 정설에 가깝다. 나중에 치워야지 하는 마음을 갖기도 하지만, 설거지를 예로 들어봤을 때 몇 개 없을 때는 바로 하게 되지만, 많이 쌓이는 경우 저걸 언제 다하나 싶어 미뤄질 때가 더 빈번한 것이 사실이다.
아침부터 선별 작업에 들어갔지만, 아이의 뮤지컬 수업에 가야 하기에 와이프는 나머지 작업은 내가 이어해달라고 말하고 집을 나섰다. 아이의 방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일단 많은 것들이 버릴 것으로 구분돼 있는 형국에 놀라 치울 걱정에 나온 한숨이고, 두 번째로 '내가 저리 많은 것을 그대로 쌓아 두었나?' 하는 자책 섞인 한숨이다.
우선 쓰레기봉투 안을 본다. 일단 봉투 안으로 들어간 것은 꺼내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다만, 유치원에서 만들었던 저금통이 보인다. 흔들어 보니 예전에 넣어준 동전 소리가 들린다. 그것만 꺼냈다.
아직 정리가 안된 바닥에 널브러진 것들을 보고 재활용 쓰레기부터 분류한다. 종이, 비닐, 플라스틱류로 분리하는 것은 쉽다. 대부분 종이류이기 때문에 부피가 크다. 학교에서 공부했던 내용들은 따로 분류한다. 나중에 볼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 어린이집, 유치원 때의 자료들을 아직은 모아두었기에 일단은 버리지 않아보려고 한 곳에 모아둔다. 장모님께서 아직도 몇 가지 놔두어 얼마 전 아이에게 보여주셨던 것을 보니 대단하다고 느꼈기에, 나중에 아이도 그럴 경우가 생길까 하는 합리화이다. 두 번째로 색종이들도 하나 둘 다시 펴 모아둔다. 한두 번 접고 버려지는 종이가 너무 많아 잘 펴서 눌러두고 다시 써 왔기에 정리한다. 그리고 나머지 책들과 노트류를 한 곳에 모아 책장에 꽂아둔다. 노트류를 펼쳐보니 한두 장 쓰고 버려놓은 것이 너무 많아 씁쓸한 생각이 든다. 노트를 포함하여 연필도 새것만 꺼내 한 번 깎고 쓰고 안 쳐다보는 것들이 자꾸 쌓이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해 가르쳐 주어야겠다고 마음먹기만 여러 번이다.
항상 딜레마다. 나한테 오롯이 집중을 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만 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소비가 된다. 그렇다고 내 것에 집중을 하니 집안일이라든지 아이에게 신경을 쓰는 시간이 줄어들어 그 결과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항상 양날의 검을 손에 쥐고 어느 쪽으로 베어야 하는지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어렵다. 어느 쪽에 힘을 실어야 할지를 잘 판단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필요한데,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함은 아직 수련이 부족한 결과이다.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보니 내가 더 움직이고 행동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본다. 체력적인 한계에 봉착하고, 체력이 방전됨에 따라 다시 멘탈이 약해지는 시기가 올 것이다. 늘 리듬이 생기듯 할 텐데, 그 또한 이겨내야 할 숙제이다.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보고 최선의 선택을 하고자 최대한 고민해 보고 행동으로 옮기면 된다. 어려울 때는 초심자의 마음, 최소한의 성취를 쌓아 올리는 것에 집중하여 빠르게 회복을 하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 56일 차 일기를 쓰고 있는 이 시점에 깨우친 작은 가르침이다.
오늘 아이와 와이프가 뮤지컬을 간 시간 동안 교육 수강 및 블로그에 올릴 것을 정리하겠다고 마음먹어 두었기에 우선 그것들을 하고 난 후 정리를 시작한 터라 와이프가 돌아올 때까지 마무리 짓지 못했다. 내가 제아무리 바삐 움직여도 절대적인 양이 있다 보니 물리적으로 소요되는 시간은 무시할 수 없다. 싱크대에 쌓인 설거짓거리를 하나 둘 닦다 보면 바닥이 보이고, 그럼 탄력이 붙는 것처럼, 우선 분류를 해두고 난 후에 하나 둘 정리를 해 나가니 점점 공간이 생겨간다. 빠르게 재활용 통에 나하 둘 옮겨보내고, 보관이 필요한 것들을 분류에 맞춰 배치시킨다. 책들은 마저 순서에 맞춰 선반에 꼽아두고 바닥에 남은 것들을 주어 쓰레기봉투에 담는다. 앉은뱅이책상 위에 쌓아 올려져 있던 수많은 것들이 많이 없어졌다.
와이프는 많이 치웠다며 탄성을 낸다. 속이 후련한가 보다. 오전에는 심기가 불편해 보였지만, 어느 정도 정리를 하고 난 후의 모습은 편해 보인다.
정리하는 것에 습관이 잘 들지 않은 나는 사실 불편함을 그렇게 많이 느끼지 못하는 부분이나, 정리 정돈을 잘 하고 신경 쓰는 와이프에게는 그런 것들이 많이 불편한 요소이다. 서로 다른 부분이긴 하나, 정리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은 것이 사실이니 와이프의 말처럼 쌓이기 전에 정리를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설거짓거리가 쌓이고, 침대 보가 정리되지 않고, 거실과 안방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와 아이 장난감 등은 바로바로 치우는 것이 습관화되어 가고 있지만, 그 외의 것들은 아직이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멈춰있지 않고 고쳐가고 있음이 중요하다.
물리적인 변화보다 화학적인 변화가 어렵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몸에 배어 온 패턴과 괘념치 않았던 것에 대해 신경을 쓰는 변화는 후자이기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자꾸 이야기를 듣고, 아이에게도 좋은 본보기를 보여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하나 둘 고치게 된다.
항상 그 놈의 '미련' 때문에 쉽게 손아귀에서 놓지 못한다. 물건의 가치, 물건의 효용 등 현재 시점에서 잘 판단을 해본다면 생기지 않을 것들이다. 아직 내가 과거에 머물고 있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시점에 작은 가능성에 나 자신을 합리화하고 타협을 하고 있는 것들이 아닌가 싶다.
정리와 미련이라는 것은 끈을 끊어낸다는 점과 아직 놔둔다는 점에서 서로 반대되는 딜레마이다. 오늘 아이 방 정리라는 별것 아닌 일에서 시작된 딜레마로부터 아직도 쓸데 없는 고민을 하는 습관을 다 덜어내지 못하고, 과거에 대한 미련과 미래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직시하게 된다. 그리고 아직 덜어낼 것이 많이 있음을 인지해 본다. 마음을 비우는 일은 참으로 많이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끝이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본다. 하지만, 계속하다 보면 내 마음속도 미련은 점차 줄고 잘 정리 정돈 되어 공간이 생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