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부터 아이의 재잘거리는 소리에 잠을 깬다. 평소에 비해 아이의 기분은 무척 좋아 보이고 들떠있다. 엄마와 수다 떠는 소리가 계속된다. 이는 사촌 언니, 오빠들과 만나는 날이기에 설렘에 의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그동안 감기로 제대로 잠을 못 자다가 감기가 거의 다 나아 컨디션이 한껏 올라간 터일지도?
주말에는 조금 더 느지막이 일어나고 싶은데, 이미 아침부터 둘은 바쁘다. 아이는 벌써 아침을 먹고 TV를 보며 깔깔대고 있다. 며칠 아프다는 핑계로 미뤄둔 숙제를 조금이라도 해둬야 사촌 언니, 오빠들이랑 맘 놓고 놀 수 있을 것 같아 TV를 끄고 학습지를 펼쳐 보지만 아이는 쉬이 집중을 하지 못한다. 옆자리에서 아이와 마주 보는 자리로 옮겼다. 그리고 아이에게 설명을 해주며 함께 문장을 읽어본다. 그동안 조음 부분에 대해서 여러 설명을 해주며 많이 좋아졌지만, 의외로 'ㅁ', 'ㅂ' 소리가 잘되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ㄱ'을 'ㅇ'으로 들리게 발음을 하곤 했다. 마주 앉아 문장을 읽는 아이의 입 모양에 집중을 해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인을 찾게 되었다. 바로 입을 닫지 않은 채 벌리고 말을 하고 있었다. 조금 더 일찍 평상시 말을 할 때에도 아이의 입모양에 집중을 했더라면 이유를 빠르게 찾고 고치도록 노력해 주었을 텐데 아쉽다. 아이에게 'ㅁ'과 'ㅂ' 소리를 제대로 내려면 꼭 입을 닫아야 한다고 말을 해주었고, 함께 천천히 읽어가며 소리를 정확하게 낼 수 있도록 반복에 반복을 더했다. 'ㅁ'과 'ㅂ'은 평소의 발음에서 입만 닫고 소리를 내게 되면 쉽게 해결되기에 여러 문장을 가지고 연습을 했고, 금세 소리가 정확하게 나오게 되었다.
아이도 소리가 정확해지는 것을 느끼고, 마주 보고 있는 아빠의 표정이 밝아짐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중간중간 하이파이브를 하며 이어갔다. 하나, 집중력은 여전히 나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뮤지컬 「애니」의 넘버인 '너무 힘들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항히스타민 약을 복용하기도 했고, 아침부터 학습지를 공부하겠다고 하니 졸음이 몰려왔나 보다. 오후에 언니 오빠들이 오게 되면 놀아야 하기 때문에 아이가 잠을 잘 수 있도록 했다. 눕더니 금세 잠이 들어버린다.
(오늘은 여러 가지 기분 좋은 일들이 많았기에 뒤 이어 쓸 내용이 많지만, 쏟아지는 졸음에 우선 여기까지 쓰고 일어나 마저 쓰도록 하겠다)
아이는 사촌 언니들과 오빠를 매우 좋아한다. 이쁨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아이에 맞춰서 잘 놀아주기 때문에 그렇다. 오늘 애석하지만 이제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 언니가 오지 않았다. 1살, 3살 터울의 오빠와 언니만 왔다. 오빠는 아이와 만들기를 좋아하는 성향이 같다. 3살 터울의 언니는 친구들과 어른들 모두에게 인기가 많을 정도로 남들을 잘 챙기고, 아이도 특히 둘째 언니를 잘 따른다. 부모님으로부터 동생네 식구들이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우리도 부모님댁으로 건너갔다. 아이는 엘리베이터에서
"저 오늘은 언니랑, 오빠랑 안 싸울 거예요."라고 말을 한다. 지난번 언니가 뽑기 하는 곳을 데리고 가 5천 원이나 썼지만, 아이가 원하는 돼지 키링을 뽑아주지 못해 언니에게 화를 내며 성질을 냈었던 게 생각이 났나 보다. 당시에는 말하지 않았었지만, 내심 마음에 두고 있었나 보다. 그렇게 먼저 잘못했음을 인지하고, 오늘은 하지 않겠다는 말을 먼저 꺼내는 모습을 보며 미소가 지어진다. 그러한 말을 꺼내는 것이 첫 번째, 지난 일을 반성하는 모습에 두 번째, 마지막으로 오늘의 다짐을 스스로 약속하는 모습이 세 번째 이유다.
할아버지, 할머니 댁으로 다 모인 자리에서 아이는 갑자기 옷을 하나 둘 벗더니 새로 선물 받은 내복만을 입고서 돌아다닌다. 할아버지 앞에서, 그리고 언니와 오빠 앞에서, 고모 앞에서 머라고 하는데, 다들 다른 일들을 하고 있느라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들어보니
"저 이거 새로 선물 받은 내복이에요." 하고 자랑을 하고 있었다.
얼른 어머니와 동생에게 아이가 와서 내복 자랑을 하면 반응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아이가
"할머니, 저 이거 새로 선물 받은 내복이에요." 하고 말을 하였고, 할머니와 고모, 그리고 사촌 언니까지 와서 이쁘다고 하자 고개를 살짝 까닥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새로 장만을 한 머리핀, 옷 등이 있으면 그렇게 자랑을 한다. 이제 제법 말이 늘으니 여기저기 자랑을 하는 것도 잘 한다.
언니, 오빠와 방 안에 들어가 무얼 하나 봤더니 오빠는 강아지, 언니는 엄마, 아이는 아기가 되어 역할 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말하며 노는데 문제가 없다. 여러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일이 없기에, 학교에서 생활을 할 때 아이가 말을 많이 하고, 수다스럽고, 잘 지낸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와닿지 않았었는데,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니 어떻게 학교생활을 할지 상상이 되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음식점에 예약을 해두어 우선 노는 것을 중단하고 음식점으로 향했다.
음식점에 들어오자 아이들은 종이접기 삼매경이다. 최근 아이도 종이 접기에 푹 빠져있는데, 1살 터울 오빠도 아이가 즐겨보는 '네모 아저씨'의 종이 팽이 접기 책을 들고 다니며 접고 있어 서로 신이 났다. 음식이 나왔는데도 종이접기에 여념이 없다. 음식이 나오고도 종이접기를 계속하고 있어, 아이들에게 식사에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아이는
"네, 알겠습니다." 하고는 밥을 먹는데 집중을 하려고 한다. 옆에 앉은 언니가 밥숟가락을 들더니,
"먹여줄까?" 하며 집에서 하던 역할 놀이를 다시 하려는 듯하다. 아이도
"네, 엄마" 하더니 입을 쩌억하고 벌린다. 혼자서 밥을 잘 먹는데, 언니가 먹여주니 배가 볼록하게 나올 정도로 많은 양을 먹는다. 밥을 충분히 먹고 난 후에
"언니, 오빠 집에 가요? 밥 먹고 우리 어디 가요?"
"할아버지 댁에 다시 가야지? 왜?"
"더 놀고 싶어요."
아이는 자기가 필요한 것이 생기면 거의 100% 존댓말을 한다. 진심으로 언니, 오빠와 더 놀고 싶은 상황임을 말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을 역할 놀이, 숨바꼭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며 언니, 오빠들과 재미있게 논다. 전 같으면 조금 놀다가 아이가 삐지기도 하는데, 오늘은 하나같이 재미있고, 깔깔대며 노는 모습이 보기 좋다.
요즘은 하루하루 다르게 성장하는 느낌이다. 늦게 보는 바람에 많이 놀지 못해 아쉬워하는 눈치다. 고모에게 자고 가도 되는지 물어봤지만, 내일 일정이 있어 안된다고 아쉬워한다. 엄마는 아이에게
"내일 숙제를 오전에 다 하면 오후에 언니들 시간 되면 보러 갈게."
고모도
"그래, 숙제 다하고 오후에 보자." 하고 말하니,
"네!" 하고는 다시금 미소를 짓는다.
아이는 언니, 오빠와 내일 다시 놀 생각에 아쉬움을 달래고 내일을 기약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전과 달리 말을 많이 하며 놀고, 노래 틀어달라고 하고 춤을 추기도 하고, 뮤지컬의 넘버를 불러가며 관심을 유도하기도 한다. 전보다 더 잘하는 것도 많이 생기고 드러내고 싶은 듯하다. 태권도와 뮤지컬을 하고 난 후에 적극적인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다.